1989년 4월 노태우 정부는 성남 분당과 더불어 고양 일산에 수도권 신도시를 짓겠다고 공표했다. 1년 전 안양 평촌, 군포 신본, 부천 중동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어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200만호 건설 목표 달성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강 이북에 신도시가 들어선다니 놀랍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휴전선까지 20㎞ 남짓인 지근거리에 인구밀집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구상이 당시의 안보논리 상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후일담에 의하면, 고양 백마사단장을 지낸 노 대통령이 각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산 신도시를 밀어붙였다고 한다.
1992년 고양시 승격 전, 고양군을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3~4개의 시로 분할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대두하였다. 신도시가 들어서는 일산 쪽과 원당, 지도, 신도, 화전 등이 별개의 생활권으로 발전하고 있었던 탓이다. 결국 도농복합시라는 개념으로 하나의 도시 정체성을 유지하기로 결론이 났다. 일산 주민들을 중심으로 고양시 대신 일산시로 명칭을 바꾸자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고양'이라는 500년 넘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거로 귀착되었다. 그 덕에 고양시는 오늘날 전국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기초자치단체가 꼽히기에 이르렀고, 특례시로 승격할 수 있었다.
고양은 서울을 서북쪽으로 감싸고 있는 고장이다. 조선총독부는 고양을 수제비 반죽 주무르듯 주물러 뗐다 붙였다 행정구역을 개편했다. 1914년 고양군 아래 면을 설치해 여의도에서 뚝섬과 잠실까지 관할하게 했다가, 1936년에는 일부를 떼어 경성부(서울)로 편입시켰다. 한강 북쪽 서울 가운데 도봉구 노원구 등 양주군에 속했던 지역을 제외하면 모두 고양군 땅이었다. 해방 직후 고양군 숭인면 뚝도면 은평면이 완전히 서울시로 넘어갔다. 고양군청은 1961년 8월 초까지 서울 을지로에 있다가 원당면 주교리(현 덕양구 주교동)로 옮겨왔다.
고양시 시청사 이전 문제를 두고 시끌시끌하다. 민선8기 시장이 전임 시장 때 추진된 주교동 시청사 신축 계획을 백지화하고 일산동구 백석동으로 시청을 이전키로 결정한데 대해 덕양구 시민들 반발이 거세다. 백석동 이전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시 재정 몇천억을 절약할 수 있다고 반기는 반면 이전 반대 측은 덕양구의 발전 지체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주장한다. 자칫하면 '고양'이라는 지역정체성을 위협할 가능성도 감지된다. 정답은 없다. 지역통합을 유지하는 것만이 올바른 선택일 리도 없고, 쪼개는 게 능사일 리도 없다. 다만 이렇듯 날카롭게 지역여론이 대립하는 방식으로 이전을 추진하는 게 최선이었지 묻고 싶고, 답을 듣고 싶다.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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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의 발전축은 고양대로가 아니라 중앙로여야 합니다.
이건 상식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