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지난 24일 제300회 정기연주회를 가졌다. 이날 연주회는 우크라이나 지휘자 유리 얀코가 지휘봉을 잡았다. 공연 주제는 베토벤의 '영웅'.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인들을 위로하고 응원하자는 취지다. 지난 35년간 탁월한 기획력을 선보였던 교향악단다운 섬세하고 치밀하고 따뜻한 배려다. 유리 얀코는 우크라이나 두 번째 도시 하르키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다. 하르키우 공연장은 러시아의 포격으로 공연장 일부가 파괴된 상태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인민예술인인 유리 얀코는 “평화와 선(善)을 위해 지휘하겠다”고 말했다. 뛰어난 음악은 언어보다 힘이 세다.

300회 정기연주회를 진행한 부천 필은 올해로 창단 35주년을 맞는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하기 전인 1988년 '부천시립교향악단'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거대도시 서울과 인천 사이에 낀 인구 50만 도시가 독자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조직하는 일은 성공 확률이 매우 낮은 모험이었다. 하지만 부천시립교향악단은 임헌정이라는 지휘자를 초빙하면서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다. 기량이 뛰어난 연주자들이 모여들었고, 이듬해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 교향악축제에 참가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부천 필의 과감한 도전은 계속 이어져 1991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 공연에 성공했다. 마에스트로 임헌정은 이어 말러의 교향곡 전곡 완주 도전 의사를 밝혔다. 당시까지 국내 어느 교향악단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부천 필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5년에 걸쳐 말러 1번부터 미완성 10번까지 모두 무대에 올렸다. 임헌정 지휘자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약속을 지켰다. 같은 기간에 부천 필은 쇤베르크와 버르토크 등 20세기 작품 초연과 베토벤, 브람스 교향곡 전곡 연주도 이뤄냈다. 부천 필은 국내 3대 교향악단으로 꼽히게 되었다. 아시아와 유럽 무대에서도 갈채를 받는 세계적 오케스트라로도 발돋움했다.

임헌정 지휘자는 부르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2007~2013년) 직후인 2014년 건강상 이유로 25년간 잡았던 부천 필의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부천 필의 계관지휘자다. 부천 필은 상임지휘자는 박영민(2015~2020년)에 이어 장윤성이 맡고 있다. 오는 5월 부천 필은 또 한 번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파이프오르간을 갖춘 전용 콘서트홀이 공식 개관하는 것이다. 부천 필은 잘 가꾼 오케스트라 하나가 도시 이미지를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은 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아, 5월이 오기 전에 우크라이나의 포성도 멎기를.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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