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은 도시계획위 올리고
재개발 가속 페달 밟아
집값도 10년만에 다시 꿈틀
“삼천하던 빌라가 억 넘어”
속도 내는 줄 알았더니
정비계획안 심의 직전 터진
'교회 존치' 요구 회견
“사업성 안 나와” 맞불집회도
2주 뒤 화수화평 정기총회
30도 날씨에도 뜨거운 열기
'종교시설 협상' 안건 나오자
“역사 보존” “법·절차대로”
<지난 줄거리>
김도진 일꾼교회 목사는 인천도시산업선교회 기념관 리모델링을 하려고 부동산에 갔다가 재개발 소식을 접했다. 정비구역 지정 10년 만에 시공사를 선정한 조합은 사업에 속도를 붙였다. 동네 한복판에서 40여년 세월을 버틴 미용실에도 찬반으로 나뉜 재개발 소식이 들려왔다.
동인천역에서 화평동 세숫대야냉면 거리를 따라가면 오른쪽에 골목이 나온다. 철길과 찻길이 뚫리기 전부터 사람들이 오갔다는 골목 끝에선 만석부두부터 배다리까지 뻗은 '화도진로' 맞은편으로 고갯길이 이어진다. 화도고개로 오르는 '화도로' 시작점이자, 화수화평 재개발 구역 경계 지점이다.
만화방과 의상실, 비디오가게와 같은 빛바랜 간판과 노란 벽면의 화도교회를 지나는 300여m 고갯길 끝자락에 쌍우물이 있다. “예전에는 대우중공업하고 이천전기 출퇴근 시간만 되면 길이 꽉 찼는데.” 자동차가 마주보고 겨우 지날 만한 화도로를 쳐다보며 미용실 주인 박희순이 말했다. “여긴 촌 동네 같아서 음식 나눠 먹고, 마늘 깐다고 하면 같이 해주거든. 근데 빌라 집값이 많이 올랐나봐.” 골목마다 내어놓은 화분들에선 꽃송이가 피어올랐다. 여느 때보다 뜨거울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6000만원 빌라가 1억9000만원
지난해 5월23일 화수동 카페에서 최미영(가명)과 동구의원 윤재실이 팥빙수를 놓고 마주 앉았다. 둘은 자녀가 같은 학원에 다녔던 인연으로 만났다. 자식들이 장성한 뒤에는 이웃사촌 사이가 됐다.
“부동산에 관심 많은 사촌언니가 얼마 전 우리 동네 와서 같이 다녀보니까 빌라가 1억원이 뭐야. 3000만∼4000만원 하던 게 1억5000만원대래. 이미 오를 대로 오른 거야.” 화수화평 재개발 구역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삼대가 모여 사는 최미영이 말했다.
'하늘의 별 따기'인 청약 대신 재개발은 새 아파트를 사는 공공연한 비법이 됐다. 재개발이 이뤄지면 단독주택뿐 아니라 빌라도 가구마다 입주권을 받는다. 사업이 무르익기 전에 '투자'하면 청약보다 적은 비용으로 재개발 구역 주택 소유주가 될 수 있다. 물론 입주까지는 시간과의 싸움이 뒤따른다. “재개발 초반에 여기 집을 사둔 사람들이 있었거든. 빈집이 많아지니까 거주 환경이 안 좋아졌어.”
정비구역 지정 10년 만에 시공사가 선정된 화수화평은 다시 꿈틀대고 있었다. 쌍우물에서 걸으면 1분 거리인 전용면적 46.15㎡의 ㄱ빌라는 두 사람이 만나고 넉 달 후 1억9000만원에 매매 계약됐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시공사 선정 이전인 2018년 10월에는 같은 면적, 같은 층의 거래 금액이 6000만원이었다.
“교육 생각하면 동네가 발전하는 게 좋겠는데, 개발하더라도 연세 있으신 분들을 어떻게 할지도 고민해야 돼. 자식들이야 좋아하겠지만.”
“어르신들은 동구가 아니면 갈 데가 없으니까.” 최미영의 말에 윤재실이 맞장구를 쳤다.
▲정비계획 심의 앞두고 맞불집회
지리멸렬했던 과거를 청산하려는 듯이 여름 문턱에서 재개발 조합은 가속 페달을 밟고 있었다. 정비계획 변경안을 심의하는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 날짜는 지난해 5월26일로 잡혔다. 동구 도시정비과는 그해 6월 정비계획을 고시하고, 12월 사업시행 인가를 접수할 예정이라고 업무보고 자료에 썼다. 감정평가를 거쳐 조합원 분양을 신청하는 사업시행 인가 단계에 다다르면 재개발 사업이 무산될 가능성은 낮아진다.
도시계획위원회 당일, 조합은 '원안 통과'를 촉구하는 집회 신고를 했다. “동네가 낙후돼서 밤에는 돌아다니지도 못할 정도예요. 교회들을 남겨두면 사업성이 나오지 않습니다.“ 조합장 전기원은 인천시청 앞 광장에서 그날 오후 일행들과 현수막을 펼쳤다. 심의 1시간 전이었다.
집회는 맞불 성격이었다. 이틀 전 인천시청 현관에선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인천산선, 현 일꾼교회)와 화도교회 존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여러 차례 회의와 진정에도 12년 전 재개발 설계도와 별 차이 없는 조합 측의 일방적 사업계획안만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2층 시장실 창문 바로 아래에서 지지 발언과 구호가 이어졌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사회를 본 이민우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얼굴에는 불안감이 스쳐갔다. “조택상 균형발전정무부시장이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장이에요. 동구청장을 지내서 일꾼교회를 잘 아는데, 최근 민원인들이 많이 찾아왔나 봐요.” 인천산선 보존대책협의회와 재개발 조합의 면담은 진척이 없는 상태였다.
▲줄 잇는 총회 관광버스 행렬
30도 초여름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배다리 쌍굴터널 앞으로 천막 20여개가 세워졌다. 지난해 6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 3시가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화수화평 정기총회'라고 쓰인 관광버스는 행사장 앞을 부지런히 오갔다. 조합원 참석비는 5만원이 주어졌다. 이날 정기총회 예산은 참석비와 인건비 등을 합쳐 2억3886만원이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하면서 인천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이 모두 멈춰 있었고, 대응하지 못한 조합은 사라졌고, 우리처럼 인내심을 갖고 지켜왔던 조합들은 결국 사업이 진행되는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회자의 말 한 마디는 그동안 오르락내리락했던 재개발 변천사를 함축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스피커 옆으로 '송림초교주변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반대편 주택가에는 '송림1·2동 재개발 구역' 조합원 분양 신청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그 사이로 '출입금지'라고 적힌 노란 띠가 행사장을 감쌌다. 행인들에겐 안전요원의 따가운 시선이 향했다.
여섯 번째 안건으로 '종교시설 협상 권한 위임 승인의 건'이 상정됐다. “종교단체가 과도한 요구를 해서 협상이 결렬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 우리 구역에 있는 교회를 수용할 권한이 조합에 있어요. 이 수용권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개인 소유 원칙보다도 상위 규정인 공공복리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는 헌법에 근거한 정비 업무를 규정하고 있죠.” 법과 절차에 대한 설명이 한동안 이어졌다. “다른 의견 있으실까요?”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화도교회 위임을 받아 참석”했다는 발언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114년 역사를 가진 화도교회는 이전을 원치 않고 있습니다. 보존을 전제로 하는 정비계획을 세워주시길 바랍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사회자는 곧바로 답변을 쏟아냈다. “조합에 말씀하실 일이 없어요. 구청에 가서 얘기하세요. 우리는 법과 절차에 따라서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다른 의견 없으시죠?” 일당 300만원이 책정된 사회자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이순민·이창욱·이아진 기자 smlee@incheonilbo.com
#화수화평 재개발 구역은
18만998㎡. 인천 동구 화수동과 화평동에 걸쳐 있는 화수화평 구역 면적은 인천 58개(10월 말 기준) 재개발 사업 가운데 청천2 구역(21만9169.5㎡)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동구에서 진행 중인 6개 재개발 사업 구역 중에선 가장 넓다.
화수화평 재개발 사업 자료를 보면 계획 세대수는 3183세대에 이른다. 재개발이 이뤄지면 주택을 포함해 건축물 1174동이 철거되고, 화수화평 구역에서 살고 있는 5673명은 거처를 옮겨야 한다. 이는 동구 전체 5만9017명(6월 말 기준) 가운데 9.6%에 해당하는 인구다.
원도심인 화수화평 구역은 지난 10여년간 부침을 거듭했다. 2009년 9월 정비구역으로 지정됐고, 같은 해 11월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재개발 사업은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2016년 뉴스테이 연계형 정비사업 공모에서 탈락한 데 이어 이듬해 지역주택조합 추진 시도 역시 무산됐다.
화수화평 구역 재개발은 2019년 6월 현대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되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재개발 조합은 사업시행 인가를 위한 절차에 착수했고, 지난해 3월 인천시 경관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