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조합 정기총회 끝나고
도시계획위 현장 방문 날,
교회 앞 '동네 살려내라' 집회
한쪽선 '인천산선 존치' 단식
보류됐던 정비변경안 재심의
조건부 수용에 “무책임한 결정”
반발 속 진전 없이 시간 흘러…
결국 나선 시 “합의 도출 역할”
화수화평 정비계획 변경 고시
단식농성도 30일 만에 멈춰
<지난 줄거리>
재개발이 본궤도에 오른 화수화평 구역에선 빌라 매매 가격이 급등했다. 정비계획 변경안을 심의하는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 일정이 잡히면서 기자회견과 집회도 잇따랐다. 지난해 6월 중순 재개발 조합 정기총회에선 교회와의 협상이 화두로 떠올랐다.
“종교단체가 알박기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저는 판단하고 있어요.”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졌다. “조합은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하고자 하니 여러분들도 도와주세요. 필요하면 시위를 할 수도 있습니다. 꼭 그렇게 하시길 바랍니다.” 종교시설 협상단을 구성하는 안건을 통과시키며 사회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화수화평 구역 재개발 조합 정기총회가 끝나고 이틀 후인 지난해 6월16일 서울에 갔던 일꾼교회 목사 김도진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회의 중에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어요. 일단 가만히 있으라고 했죠.” 같은 시각 일꾼교회와 화도교회 앞에선 수십 명이 팻말을 든 채로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현장 조사 직전 걸린 현수막
쌍우물 옆에서 미용실을 하는 박희순은 휴무일을 맞아 2층 집에서 김치를 담그고 있었다. 동네는 오전부터 소란스러웠다. 쌍우물에서 걸으면 5분 거리인 화수사거리에선 '행복주택' 준공식이 열렸다. '화수정원마을 도시재생뉴딜사업'으로 지어진 지상 5층 공공임대주택은 화수화평 구역 맞은편에 들어섰다. “행사 때문에 차가 많이 왔거든. 갑자기 고함 소리가 들려서 내다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구호를 외치더라고. 인천시에서 나온 차도 보였는데.”
전날부터 분위기는 심상찮았다. 일꾼교회와 쌍우물 주변으로 노란 바탕에 빨간 글씨가 쓰인 현수막 여러 장이 동시에 걸렸다. '버림받고 죽어가는 이 동네를 살려내라', '로비왕 일꾼교회 꼽사리왕 화도교회'. 문구는 선정적이었고, 현수막을 건 주체는 적혀 있지 않았다. 같은 모양 팻말을 든 사람들은 마침내 일꾼교회로 몰려왔다.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 분과위원회가 화수화평 구역으로 현장 확인을 나온 날이었다. 시는 “현장 조사 일정은 비공개”라며 함구한 상태였다.
그로부터 20여일 전인 지난해 5월26일 도시계획위원회는 '화수화평 재개발 정비계획 변경안'을 심의했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인천산선, 현 일꾼교회)와 화도교회 존치 기자회견에 이어 재개발 조합의 맞불 집회가 열린 직후였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나면 왜 이것을 보존하지 못했을까 하는 선례가 남을 것 같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통을 거듭한 회의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일꾼교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우리가 피할 수 없다는 것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존치시켜줬으면 좋겠는데 무허가 건물을 우리가 성지처럼 해줄 수 있는 용단을 낼 수 있겠는가, 위원들이 그런 것도 생각해야 될 것 같습니다. 분과위원회를 만들까요?” 도시계획위원회는 안건을 보류했다.
▲한 달 만에 달라진 회의 분위기
시청 앞 인천애뜰 광장에서 김도진이 침낭과 팻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단식 시작하려고요. 칠십 넘은 선배와 같이하려니까 마음이 무겁네요.” 그의 옆에는 인천산선 4대 총무를 지낸 원로 목사 김정택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주변에선 청원경찰과 인천산선 보존협의회 관계자들이 실랑이를 벌였다. 도시계획위원회 재심의를 하루 앞둔 저녁이었다.
재심의는 분과위원들의 현장 방문 일주일 뒤인 지난해 6월23일 개최됐다. 분과위 조사 이후 도시계획위원회 분위기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교회) 존치는 사업을 하지 말자는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 지연으로 이 지역이 얼마나 열악한가를 실제로 봤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현장에 나와 계셔서 절실함도 느꼈습니다.”
의사봉이 세 번 울렸다. 위원회는 정비계획 변경안을 '조건부 수용'으로 가결했다. “교회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별도 공간 또는 시설을 설치하고, 조합 측에서 종교단체와 원만하게 협의할 것”을 주문하는 권고 사항만 덧붙었다. 인천산선 보존협의회는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결정을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냈다.
달력은 6월에서 7월로 넘어갔다. “실질적인 진전은 없네요.” 달라진 건 일꾼교회 예배당에 적힌 단식농성 날짜였다. 인천시청에서 일꾼교회로 농성장을 옮긴 단식은 어느덧 20일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지난해 7월11일 일꾼교회 입구에서 김도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둘이 굶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사안을 풀어갈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원로 목사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시니까 죄송스럽지만 먼저 끝냈어요.” 열흘간의 단식을 마친 그는 밥을 오랫동안 씹어서 죽처럼 삼키는 회복식을 하고 있었다.
예배당에서 언론 인터뷰를 하는 원로 목사 김정택의 목소리가 바깥까지 새어나왔다. “대단하시죠. 새벽 3시부터 일어나서 생각을 정리하세요. 단식 40일을 넘기면 생명이 위험해지는데.” 해는 무심하게 뜨고 졌다.
▲“고쳐 쓸 수 있는 동네 아니다”
공은 인천시로 넘어왔다. “원만한 합의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다할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시는 이튿날인 지난해 7월19일 '화수화평 재개발 정비계획 및 정비구역 지정 변경' 고시를 했다.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둘러싼 논란은 행정적으로 종지부가 찍혔다. 고시 다음날 시는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자처했다. “사업 주체가 조합이에요. 주민들이잖아요.” 최도수 주택녹지국장이 말문을 열었다. “이곳은 고쳐 쓸 수 있는 동네가 아닙니다.” 그의 입을 통해 화수화평은 다시 정의됐다.
해가 또 한 번 지고 떠올랐다. 햇볕은 갈수록 뜨거워졌다. 기온이 34도까지 치솟으며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아직 내 몸이 그치라는 신호는 하지 않고 있어요.” 30일 만에 단식 중단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린 시청 계단에서 김정택이 의자에 앉은 채로 말했다.
진전이라고 볼 법한 일들은 있었다. 인천산선 보존협의회는 78개 단체가 참여한 범시민대책위원회로 나아갔다. 인천시장은 전날 페이스북에 “공존의 지혜를 모아가겠다”는 글을 올렸다. “60년 노동문화유산 가치 인정,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존치, 이것만이 지금까지 일관된 일꾼교회 입장이었습니다. 이와 다른 소문은 거짓입니다.” 김정택은 '화수화평 주민에게 드리는 글'을 읽은 뒤 인천의료원으로 향했다.
/이순민·이창욱·이아진 기자 smlee@incheonilbo.com
#재개발 사업 절차는
재개발 사업은 정비구역 지정, 조합설립 인가, 사업시행 인가, 관리처분계획 인가, 준공 및 청산 등 크게 5단계로 진행된다.
정비계획 수립과 지자체 고시를 거쳐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재개발 조합을 통한 사업 단계로 넘어간다. 조합을 설립하려면 토지 또는 건축물 소유자·지상권자 75% 이상, 토지 면적 50% 이상의 소유자 동의가 필요하다. 조합설립 인가 이후 시공사를 선정하고, 건축 심의 등의 절차를 밟는다.
사업시행 인가 단계에선 감정평가와 조합원 분양 신청이 이뤄진다. 분양을 포기하면 현금 청산자가 된다. 조합원 물량이 확정되고, 재개발 조합이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으면 이주와 철거가 시작된다. 조합원 몫을 뺀 나머지 물량은 일반 분양으로 풀린다. 준공 이후 조합은 사업비 정산을 거쳐 청산한다.
인천시 자료를 보면 기본계획 수립부터 조합 해산까지의 절차를 고려한 재개발 사업 소요 기간은 133개월, 즉 11년에 이른다. 인천연구원은 지난해 '인천시 주택정비사업 추진가능성 분석' 보고서에서 “원도심 도시·주거환경의 근본적인 개선에 대한 신중하고 체계적인 고민 없이 개별 사업의 추진 여부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원도심과 신도시와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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