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역학(易學)에서 미래예측의 방법 중 하나가 '상수리(象數理)'다. 유·무형의 상(象)과 그 형상 속에 담긴 수(數)를 파악하여 다가올 일을 예측(理)한다는 것이다.
먼저 형상에 대한 설명은 '부시맨'이라는 영화이야기로 해보자. <부시맨>은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서 살아가던 부시맨 부족 마을에 어느 날 비행기 조종사가 떨어뜨린 콜라병 하나로 인해 갖가지 해프닝이 벌어지는 코미디영화이다. 난생 처음 보는 문명세계의 산물인 코가 콜라병을 보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격론을 벌인 끝에 신의 물건이란 결론을 얻었으나 그 병으로 인해 마을의 평화가 깨진다. 그러자 주인공은 그 콜라병을 신에게 돌려주기 위해 세상의 끝이란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특히 재미있는 장면은 부시맨이 콜라병을 나름대로 분석한답시고 요리저리 콜라병을 뜯어보는 장면들이다. 세상에 있는 유형의 물건[象]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숫자[數]를 알아야 한다.
유형물은 오직 숫자로써 그 정체성을 드러낸다. 예를 들면, 볼펜의 경우는 길이, 두께, 볼펜심의 지름, 육각형의 곡경 등을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 이렇게 각 부분을 수치로 나타낸 설계도를 3D출력기로 재생하면 똑 같은 볼펜이 나온다. 하지만 무형의 상(이미지, 느낌)은 숫자로 객관화시키기가 어렵다. 즉 얼굴에 나타난 기쁜 표정이나 화난 표정을 어떻게 수치화(數値化)할 수 있겠나? 기쁨의 정도가 '25'인지, 분노의 수치가 '74'인지 그건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유형의 상은 숫자로 전환이 쉽지만 무형의 상(느낌, 낌새)은 쉽지 않다. 우리들은 하루에도 수만 건씩 쏟아지는 정보의 바다 속에 살고 있다. 게다가 이전보다 더 높은 교육수준과 문명의 혜택으로 옛사람들보다 더 똑똑해졌고, 풍부한 지식들을 갖고 있다.
우리들이 접하는 정보들은 수치화된 데이터도 많지만, 반면에 계량화할 수 없는 주관적인 데이터도 많다. 그러다보니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처럼 실제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 계량화된 정보만 있으면 만사 OK인가? 꼭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예를 들면, 시시각각으로 수치화된 투자정보들을 제공받아 주식에 투자하지만 실제 성공투자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성공적인 주식투자는 기업관련 데이터, 차트, 매수·매도 시점 같은 수치정보도 중요하지만 투자심리 같은 주관적인 변수들에 의해 좌우될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상수리와 '징크스(Jinx)'를 혼동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운명적인 예감(象), 어떤 특정 숫자(數)와 연관된 것은 비슷할지 모르나 정확히 말하면 둘은 같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비록 상과 수는 같다 할지라도 징크스는 예측(理) 결과가 한 개인의 주관적 판단인 사리(私理)이며, 주로 불길한 일을 지칭한다면, 상수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리(公理)이며, 행·불행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또 유교철학에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것이 있다.
사서의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말로 '사물이나 현상 속에 깃든 이치를 탐구하여 자신의 지식을 완전하게 이룬다'는 뜻이다. 옛 성현들은 “경서(經書)를 깊이 연구하는 것은 실용(實用)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파한다. 상수리를 공부하는 목적도 마찬가지다.
“다가오는 미래를 알아서 그에 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앎(知=理)이란 손에 잡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용이 가능한 지식이 될 때만 살아 있는 것이다.
/한태일 한역(韓易)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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