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산(巨山)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 단독으로 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부터였다. 당시 조선일보사 사회부장을 맡고 있던 필자는 민주화 투쟁으로 요동치고 있던 대한민국의 상황과 미래를 논의하면서 그가 지닌 덕목(德目)을 감지할 수 있었다. 혼란 속의 정계에서 민주당을 이끄는 거산에게 마산에 계신 아버님을 자주 찾아뵙는 게 좋겠다는 진언을 드렸고 그 후 거산은 매달 한 번씩 아버님 김홍조옹을 찾아 인사를 드렸다.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등을 성취한 야권에서는 1988년 초에 실시된 총선거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정계 진출을 권유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제의를 수락하지는 못 했지만 그가 일생 추구하고 있던 민주화의 길에는 항상 함께하겠다는 뜻을 성심껏 전했던 기억이 새롭다.
▶1990년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에 들어간다'면서 거산이 3당 통합을 결단했을 때 관훈클럽의 총무(회장)를 맡고 있던 필자는 롯데호텔 지하에 있던 일식집에서 그를 단독으로 만났다. 근 40여년의 정치역정을 통해서 독재와 군사정권 타도를 외쳤던 분이 어떻게 군사정권의 정당과 합당을 할 수 있느냐는 비판적인 질문에 거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답은 간단하고도 명료했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대연정(大聯政)이나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의 글라스토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보면서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도 발상의 전환을 해야 된다는 논리였다.
▶필자는 그 후 인천에서 선출직 공직자를 지망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간단명료하고 솔직담백하며 동지를 아끼는 그의 인품과 인간미를 계속 흠모하고 있었다. 대통령 퇴임을 열흘 정도 앞둔 1998년 2월 필자를 청와대로 초청한 거산은 선거 때 뜻을 못 이룬 것을 위로하면서 하나회 해체와 실명제 실시와 재임 중에는 “재벌들에게는 한 푼도 안 받았다”고 했다. 그로부터 9년 후 인도의 뉴델리와 힘겨운 유치 경쟁 끝에 아시안게임이 성사된 후 상도동으로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니 “신 위원장이 오랜만에 당선되었네요”라면서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성공' 대신 '당선'이라며 축하해 주신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지난주 국회에서는 민주화 추진협의회 주관으로 '민주화와 문민정부 출범 30년 기념 세미나'가 열렸다. 김덕룡 민주협 이사장은 “문민정부 30년의 역사는 대한민국 민주화 30년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한다”고 했고 권노갑 이사장은 “진정한 민주화는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으로 성취되었다”고 말했다. 민주화 운동 당시 낯익은 인사들이 다수 참석한 기념 세미나에서는 “부정 수단으로 권력이 생길 때 국가의 정통성이 유린당하고 법질서가 무너진다. 이 나라에 다시는 정치적 밤은 없을 것”이라던 거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취임사 구절이 회상되었다.
/신용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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