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병 시사평론가
▲ 박상병 시사평론가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가끔 국립서울현충원을 찾는다. 사색하기에 도심에서 이만한 곳을 찾을 수 없다. 적멸에 들어간 수많은 영혼을 보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도 새삼 되새겨 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또 물어보지만 하늘은 높고 땅은 골곡지다. 그저 경내 이곳저곳을 다니며 비석에 새겨진 이름들을 맘속으로 한 분씩 불러볼 따름이다.

현충원에서 꼭 둘러보는 곳이 있다. 임시정부요인묘소와 독립유공자묘역이다. 일제강점기 때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선열들이 잠들어 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어지는 엄숙한 공간이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오늘의 현실에 부끄러운 마음도 감출 수 없는 곳이다. 거기서 멀지 않은, 경관 좋은 언덕에 장군 제2묘역이 있다. 이곳은 참으로 당황스럽다. 죽어서도 야스쿠니 신사에 묻히고 싶다던 신태영, 그와 일본 육사 동기인 친일파 이응준 등이 묻혀 있다. 그 아래가 박은식, 이상룡, 지청천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잠들어 있는 임시정부요인묘소다. 어째서 서로가 적이었던 그들이 위아래로 함께 묻혀 있어야 하는지 맘이 영 편치가 않다. 현충원의 불편한 진실이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이 현충원을 오간다는 소식이다. 이번엔 주인공이 정병주, 김오랑, 정선엽 등 12·12 쿠데타 때 반란군과 맞섰던 참군인들의 묘소라고 한다.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을 이어가면서 시민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미처 몰랐던 현대사의 비극을 제대로 체감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정병주 장군의 삶은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다. 그는 장군 제1묘역에 잠들어 있다. 그러나 거기엔 당시 반란군이었던 백운택, 일제 간도특설대의 상징 김백일, 신태영의 아들 신응균도 묻혀 있다. 서로 적이었던 그들이 왜 여기서도 함께 묻혀 있어야 하는지 현대사의 비극은 대대손손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광화문에서 12·12 쿠데타의 수괴 전두환 2주기 추모식이 있었다. 추모식 위원장은 정병주를 배신한 박희도였다. 군중들 앞에 구순의 박희도는 손을 흔들며 환하게 인사했다. 성찰도,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다. 그들의 천하를 이뤄내고 우리 시대의 주류가 된 그들이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물론 100년 전의 역사도 그랬다. 이런 판국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그 시비를 가려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침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선정했다. 눈앞의 제 이익만 좇는 오늘의 세태를 한탄하는 말이다. '서울의 봄', 현충원을 찾는 우리 젊은이들만큼은 부디 '의(義)'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피눈물로 범벅된 질곡의 우리 현대사를 보듬어 안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상병 시사평론가



관련기사
[썰물밀물] 손학규의 의로운 분노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그때도 21대 총선의 룰을 정하는 문제를 놓고 정치권이 한창 갑론을박을 벌였다. 특히 한국 선거정치사의 새로운 흐름이 될 것 같았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과연 현실화되느냐에 온통 관심이 집중됐다. 당시 제3당인 바른미래당과 정의당이 당의 운명을 걸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했다. 그러나 집권당인 민주당은 미지근했으며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반대 속에 합의 처리를 주장했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없으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무산될 분위기였다. 두 거대 정당의 기득권 카르텔은 당시 [썰물밀물] 미국 발 불출마 선언 미국 민주주의가 갈수록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미국의 정치학자뿐만 아니라 주요 언론에서도 이젠 어렵지 않게 비슷한 얘기를 접할 수 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 때가 그 절정이었다. 당시만 해도 '링컨의 공화당'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망가졌느냐는 자조가 넘쳐났다. 심지어 트럼프의 대선 패배 이후 그의 지지자들이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미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민주당 바이든 행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지금은 어떨까. 미국 민 [썰물밀물] 극우를 선택한 아르헨티나, 에비타의 눈물 우리와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 하면 마라도나와 메시로 상징되는 세계 최강의 축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역사나 경제에 조금 관심이 있다면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세계적 경제대국 아르헨티나를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아르헨티나의 민주주의가 군사쿠데타로 인해 몰락을 반복했던 피눈물의 역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아르헨티나 국민의 영원한 연인, 에바 페론(Eva Peron·Evita)의 슬픈 스토리도 기억할 것이다. 그녀의 얘기를 다룬 1996년 영화 '에비타'에서 [썰물밀물] 한동훈 띄우는 민주당 어느 정권이든 최고 권력자가 있으면 그 이후를 예비하는 2인자가 있기 마련이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는 대체로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면서 대통령 못지않은 관심도 받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치 왕조국가의 황태자처럼 미래권력의 상징적 인물로 회자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두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다.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다. 때론 2인자가 있는지, 있다면 누군지 헷갈릴 때도 적지 않았다. 또 어떨 때는 2인자를 자처하는 인물들이 너무 많아서 그들끼리의 싸움으로 자멸한 경우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