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 하면 마라도나와 메시로 상징되는 세계 최강의 축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역사나 경제에 조금 관심이 있다면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세계적 경제대국 아르헨티나를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아르헨티나의 민주주의가 군사쿠데타로 인해 몰락을 반복했던 피눈물의 역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아르헨티나 국민의 영원한 연인, 에바 페론(Eva Peron·Evita)의 슬픈 스토리도 기억할 것이다. 그녀의 얘기를 다룬 1996년 영화 '에비타'에서 마돈나가 불렀던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는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노래가 되었다.
그러나 에비타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르헨티나는 지금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고통과 절망의 땅이 되고 말았다. 중앙은행 기준금리가 100%를 넘고 있으며 연간 소비자 물가지수(CPI)도 지난달엔 142%를 기록했다. 페소화는 휴지처럼 나뒹굴고 있으며 다수의 국민은 빵 한 조각도 구하기 어렵다. 사실상 국민의 절반이 빈곤 상태다. 그러니 인권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국가부도가 임박했다는 얘기도 낯설지 않다. 빚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 벌써 열 번째다. 이쯤이면 온전한 나라라고 할 수가 없다.
아르헨티나에서 지난 19일 결선투표 끝에 극우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G. Milei)가 집권 페론주의자 마사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집권세력의 경제파탄에 대한 분노의 심판이었다. 현실에 대한 극단적 위기감이 무명의 극우주의자이자 미국 트럼프보다 더 기괴한 정치 초보자에게 아르헨티나의 미래를 맡긴 셈이다. 틈만 나면 '자유'를 외치거나 선거운동 때는 복지정책을 박살 내겠다며 전기톱까지 들고나오더니 쏟아내는 공약도 끔찍하다. 단순히 공기업 민영화나 복지 축소 등의 '최소 정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중앙은행 해체, 자국 화폐인 페소화 폐지, 달러화 통용, 총기 소유 합법화 심지어 장기 매매와 신생아 매매도 합법화를 공약했다. 게다가 자국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해 '공산 독재주의자들과 친한 더러운 좌파'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국민이 오죽했으면 이러한 밀레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을까 싶기도 하다. 국민 삶이 절망인 현실에서,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극도의 분노가 결국 너무도 위험한 극단의 인물 밀레이를 아르헨티나의 미래로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르헨티나 국민은 이제 한시름 놓을 수 있을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자칫 엎친 데 덮치는 격이 될 수 있으며, 어쩌면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밀레이의 극우주의는 위험하고 극단적으로 보인다. 당분간 '에비타의 눈물'도 마르진 않을 것 같다.
/박상병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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