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별을 고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아모르 오즈 作 '세계문학'
1950년대 이스라엘 배경
화자인 한나와 남편 미카엘
만남부터 결혼 이후까지
내면 흐름과 갈등 담아내
▲ 나의 미카엘 아모르 오즈 지음 세계문학전집 민음사

이제서야 <나의 미카엘>을 펼쳤다.

그렇게 <나의 미카엘>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한숨을 터뜨리게 했고, 과거 기억이 문장마다 엮이며 내면은 화끈거렸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아모르 오즈(1939∼2018)의 <나의 미카엘>은 세계문학이지만, 영미 문학에 익숙한 우리에겐 낯설다. 이 소설에서는 1950년대의 이스라엘 분위기와 해방공간이 갖는 세대간의 갈등, 풍요 속의 불안 등을 읽어야 한다. 하지만 독자 대부분은 문장마다 스며든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생과 시간이란 파고 속에 가엾게 떠다니는 삶의 나약함에 한숨을 내뱉을 거다.

<나의 미카엘>의 시간적 배경은 1956년 수에즈 위기 전후이고, 공간은 예루살렘과 키부츠이다. 화자인 한나의 내면을 차지하는 불안감은 당시의 분위기와 같다. 그리고 안개 낀 예루살렘과 비에 젖은 예루살렘, 메마른 늦가을 예루살렘을 통해 옅은 시온주의를 걷고 있는 예루살렘 주민의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한나와 미카엘의 만남을 시작으로 한 약 10년간의 이야기이다.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한나는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했다.

둘은 비 오는 겨울 아침 오전 아홉시, 대학의 한 계단에서 만났다. 미끄러지는 한나를 붙잡아준 미카엘. 둘은 그렇게 시작했지만, '발목'을 좋아하는 미카엘과 달리 '손가락'에 관심을 보인 한나처럼 둘 사이 간극은 예견됐다.

그렇게 한나는 끊임없이 죽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젊어 죽는 것도, 늙어 죽는 것도 두려워한다.

한나는 “몸에 고통을 주면 마음에 평화를 줄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적어도 그 사람이 이미 사랑하고 있던 사람하고 조금이라도 닮기를 원한다”고 했다. 또 “꿈이 산산조각 나면 민감한 사람들은 구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깨진다”고 말한 한나의 내면은 아슬아슬 유리 같다. 한나는 '크리스털'을 좋아한다.

한나는 “이니셜 H.G.(한나 고덴)은 '축제'를 뜻한다. 평생이 하나의 긴 축제가 될 수 있다면”이라고 읊조리며, 기억의 파편들이 조금씩 머리에서 빠져나가는 것에 “망각이 나의 방어를 뚫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나의 미카엘>은 아모르 오즈가 29살에 썼고, 우리나라에는 1998년 번역됐다. 이 책은 정치적 수사도 전쟁 이데올로기 등의 직접적 언급도 없다. 성찰이란 메시지 역시 전달하지 않는다. 오직 내면의 흐름과 갈등만이 담겨 있다.

그렇게 난 <나의 미카엘>을 떠나 보냈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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