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 향해 간다
당신을 위한 책 한 권
▲ 죽음의 역사 앤드루 도이그 지음 석혜미 옮김 _로크미디어 468쪽, 2만2000원

 

 영화 '컨테이젼'이 떠오른다. 당시는 황당한 내용이라 여겼다. 영화 내내 '차라리 좀비가 나을까'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얼마 뒤 좀비 영화가 나왔다. '월드워 Z', 남주가 동분서주하며 좀비에 맞선다. 당황스러운 영화 끝,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무슨 차이일까.

<죽음의 역사>는 형이상학적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죽음의 이유를 명쾌하게 답한다. 책 속 엄청난 죽음의 숫자 속에는 인생의 가치와 철학은 없다. 그저 시작부터 끝까지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란 내용으로 꽉 찼다.

책의 원제 'THIS MORTAL COIL(생의 고리,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에서 알 듯 태어난 순간부터 인간은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상당수 대재앙은 전염병 때문이다.

강을 건너 대륙을 가로지르는 교류 때문에 발생한 전염병, 문명의 발전이란 명분으로 자연을 거스른 파괴들로 전염병은 빠르고 거침없이 인간에게 침투했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1798년, 천연두 예방접종의 선구자 에드워드 제너는 '우두의 원인과 효과에 대한 연구'란 논문에서 “자연이 정해준 원래 인간의 자리를 벗어나 일탈하면 다양한 질병을 얻게 되기 쉽다”고 강조했다.

책을 쓴 앤드루 도이그 (Andrew Doig) 영국 맨체스터 대학 생화학과 교수는 14살 때 칼 세이건(Carl Sagan)의 <코스모스>에서 책의 영감을 얻었다. 그는 흐트러짐 없는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어려운 의학사가 풀어냈다.

천 년 전 '깨끗하게 살자'란 현자의 경고를 무시했던 인간은 환경파괴가 불러온 전염병 대참사를 겪었다. 수백, 수천만, 수억명의 인간이 죽음을 맞은 후에야 겨우 청결함을 유지하며 백신을 찾았다.

이 책은 14세기 흑사병이 발생한 이탈리아 중부 도시 시에나로 시작하며 “우리가 이 속세의 번뇌를 벗어버린 다음, 죽음의 잠 속에 어떤 꿈이 올지 생각하면 망설일 수밖에”란 햄릿의 명대사로 책장을 연다. 그렇게 '죽음의 원인'과 '전염병', '내가 먹는 것이 곧 내가 된다', '치명적인 유산', '나쁜 행동' 등 5부로 구성된다.

그리고 생각 밖에 있던 '연명치료'와 '생명 연장'이란 글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뇌사상태에 빠진 18살 영국 청년 토니 블랜드, 그는 4년의 연명치료를 받았다. 연명치료를 끝내며 판사는 “치료를 중단하더라도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결론 내렸다. 과연 토니 블랜드는 사건이 발생한 18살에 사망한 걸까. 아님 4년이란 연명치료 후인 22살에 죽은 걸까.

책은 또 소시민이 죽음을 지켜낸 여러 사례를 나열한다. 최초의 세탁소를 연 아일랜드 이민자 키티 윌킬슨 덕에 세균이 득실거리는 옷과 이불을 깨끗하게 해 전염병을 예방했고, 레몬즙으로 괴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골 의사는 찾아냈다. 또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라며 교통사고 위험성을 알린 미국 변호사 랄프 네이더로 인해 대규모 죽음의 원인이 씻겨 나갔다.

거울 속 “이 사람이 나를 죽일 확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언제나 유념해야 한다. 바로 젊은 층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죽음으로 내몬다.

그렇게 앤드루 도이그는 “수명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심장질환, 뇌졸중, 폐 질환, 당뇨와 암의 발병률이 높아진 면도 있지만, 생활양식의 변화 역시 이러한 질병을 초래하는 주된 원인이다. 우리는 이제 너무 많이 먹고, 마약을 하고, 담배를 피우고, 과음하고, 운동을 싫어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점점 오래 살고 있어서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치매 등 노년층에서 흔한 신경퇴화질환 발병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썼다.

<죽음의 역사>에서는 북한 지도층이 인민을 대규모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폐쇄되고, 공포적인 조지오웰의 '1984'와 같은 사회가 다수의 인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출처가 불분명한 2025년 백두산 폭발설로 가뜩이나 심란한 우리 사회에 1783년 아이슬란드 라키 화산 폭발이 불러온 서유럽의 연쇄 사망 사례를 소개한다.

육체노동의 강도가 변하며 과거 4000kcal가 필요했던 성인 남성은 이제 하루 2500kcal(여성 2000kcal)가 필요하다고 설명했고, 부록에 기대수명을 적어놨다. 죽는 날이 얼마 안남았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관련기사
[당신을 위한 책 한 권] “미쳐서라도 살아 계셨다면” 내가 쓰는 어머니 치매 일기 “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몇 년 전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친척 어르신이 입원한 요양원을 찾았다. 십수 년 전 잠깐 스친 후 다시 만난 그 어르신은, 하지만 어디에도 안계셨다. 꼿꼿하고 날이 섰던 그녀는 겨우 알아볼 정도의 형태만 남은 상태였다. 수분이 말라버린 피부는 잿빛이 돼 있었고, 오래도록 쓰지 않은 침대 옆 휠체어는 주인을 잃었다. 그렇게 죽음의 과정을 목도했다.집에 오는 길 어머니는 말했다. “보살펴주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 혼자 죽더 [당신을 위한 책 한 권]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장국영, 레슬리 청(Leslie Cheung) 그리고 장궈룽(張國榮).그는 언제나 웃는다. 시간이 이만큼 지났지만 그 모습 그대로다.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장국영을 떠올린다.영웅본색의 당연정(當年情)을 들으며 20대를 지나 30대에 얹혀진 장국영을 그린다. '그때의 우정'은 사라졌지만, 더 나은 내일이 될 것이란 영웅본색(A Better Tomorrow)을 기억하는 10대의 나, 그리고 바람처럼 사라진 장국영을 놓아주지 못하는 지금의 나. 그렇게 나는 장국영과 레슬리 청, 장궈룽을 사랑했다.2 [당신을 위한 책 한권] 미중전쟁, 작은 불꽃도 조심하라 '투키니데스의 함정'이란 말이 있다.신흥 강자 아테네와 기존 승자 스파르타의 전쟁 이유를 명쾌하게 분석한 가설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니데스는 27년의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충돌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로 남겼다. 투키니데스는 국제관계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라는 문장을 남겼다.하버드 대학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예정된 전쟁>을 통해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 작은 불꽃으로부터라도 시작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이 책은 과거의 패권국 & [당신을 위한 책 한 권] 나의 미카엘 이제서야 <나의 미카엘>을 펼쳤다.그렇게 <나의 미카엘>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한숨을 터뜨리게 했고, 과거 기억이 문장마다 엮이며 내면은 화끈거렸다.반세기를 훌쩍 넘긴 아모르 오즈(1939∼2018)의 <나의 미카엘>은 세계문학이지만, 영미 문학에 익숙한 우리에겐 낯설다. 이 소설에서는 1950년대의 이스라엘 분위기와 해방공간이 갖는 세대간의 갈등, 풍요 속의 불안 등을 읽어야 한다. 하지만 독자 대부분은 문장마다 스며든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생과 시간이란 파고 속에 가엾게 떠다니는 삶의 나약함에 한숨을 내뱉을 거다.<나의 미카엘> [당신을 위한 책 한 권]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자본주의의 부산물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 자본주의이다. 사람 나고 돈 났다.인간의 본성을 좇아 돈의 흐름을 파헤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돈과 시장의 노예가 된다. 시장의 수많은 톱니바퀴에서 인격을 찾고 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진정 자본주의가 길들인 민주주의요, 민주 시민이다.<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거대 담론 같은 경제에서 사람 냄새를 찾으려 노력한 책이다.“나를 웃게 만들고, 군침 돌게 하는 동시에 경제학에 관한 생각을 되돌아보게 만든 유일한 책, 재미나고 심오하면서 입맛까지 돋운다.” 현대 음악의 [당신을 위한 책 한 권] 보이지 않는 중국 중국을 열번 가량 찾았다. 중국은 시시각각 변했다. 도심 마천루는 하늘 빼곡 서 있고, 빈 땅을 찾을 수 없게 아파트가 틈을 메꾸었다. 그러나 매번 의문이었다. 무언가 이질감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보이지 않는 중국>에서 답을 찾았다. 난 그동안 '보이는 중국'에만 집착했지, '보이지 않는 중국'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이 책은 보고서이다. 중국 곳곳의 현상을 축적하며 이론을 정립했다. 지식만으로 쓴 책에서 오는 얕은 술수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접한 누구나 저자 스콧 로젤 미국 스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