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술자리에서 흔하게 '기자(記者)란 무엇인가'라는 놓고 열띤 토론을 하게 된다. 신임 기자가 들어오면 선후배 술자리에서 인사치레처럼 벌어지는 토론의 주제이기도 하다. 사전적 의미를 몰라서 묻거나 받는 질문도 아니다.
고리타분한 주제지만 혼란스럽거나 외압에 의해 의기(意氣)가 꺾일 때 기자들이 신세 한탄처럼 던지는 주제다. 지금 생각하면 쓴 소주 한잔 하는데 이만한 안주도 없는 셈이다. 기자(記者)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말 그대로 '기록하는 놈'이라고 말한다. 사실을 기록해 역사의 기록에 남기는 것이 기자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있는 사실을 숨기려는 자와 끊임없이 싸워 사실을 밝혀내고 그 사실을 토대로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 기자라고 후배에게 말한다. 물론 말은 그렇게 말하지만 나조차 기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늘 질문하지만 뚜렷한 답은 없다.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것은 자기만의 싸움이다. 기자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갖는 숙명이라고 할까.
지난 9월 초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화성시 시리 물류단지 조성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민간업체와 투자사에 화성시 전·현직 공무원(정무직)들이 취업했던 전력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해충돌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첨부가 있었다.
물류단지 조성사업을 그때부터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화성시의회 회의록을 토대로 사업 전반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분석했다. 2달에 걸쳐 기초 자료를 모은 다음 취재팀을 꾸렸다.
화성도시공사는 2020년 4월부터 4300억원을 들여 남양읍 시리 일대 67만2000㎡(20만여평)를 물류단지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사업은 민·관이 함께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해 개발에 필요한 토지매입, 인허가, 공사, 분양 등과 같은 업무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논란이 된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방식과 같다.
자료를 토대로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사업 공모지침서와 투자사 법인 등기본 등부, 사업부지 토지대장, 제보받은 자료를 분석하면서 민간업자에게 특혜 준 정황이 드러났다. 양파껍질처럼 벗겨도 벗겨도 이런 의심스러운 대목이 계속 나왔다.
화성시 전·현직 공무원의 취업한 전력도 사실이었다. 그 당시 사업계획 수립과 실행단계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누가 봐도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정황이었다. 성남시 대장동 도시개발처럼 같은 방식으로 추진되는 사업이었기에 합리적 의심은 더 커졌다. 실제 취재과정에서 대장동에서 거론되는 인물의 역할이 시리 물류단지 조성사업에서도 또 다른 이름으로 아른거렸다.
사업 공모지침서에 모든 사업 정보는 민간사업자의 동의를 받아 공개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어 일체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다. 법률가의 솜씨가 들어간 대목이다. 화성시를 통해 확인했지만 시 감사실조차 자료를 들여다볼 수 없다는 말에 혀를 찼다. 전임 화성시장 때 이뤄진 일이어서 현 시장도 자료를 들여다보지 못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들려온다.
취재팀은 확보된 자료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이럴 때면 항상 복기하는 질문이 있다. 기자란 무엇인가. 사실을 숨기려는 자와 싸워 그 사실을 밝혀내 기록하는 것은 기자의 몫이다. 시리 물류단지 사업 때문에 소주 한잔 마실 핑계가 한 번 더 생긴 셈이다. 기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김기원 경기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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