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은 달갑지 않다. 권태롭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안도감을 느낀다. 눈치챌 수 없이 조금씩 바뀌는 세상이 편하다.
지난 8월 소녀시대가 신곡을 냈다. <포에버 원(FOREVER 1)>이란 제목의 이 곡은, 동시대를 걷는 우리 세대에게는 반가움을 넘어 아련함마저 안겼다. 힘겹게 버티고, 악착같이 견뎌낸 셀 수 없는 일상이 이제는 옛날 영화를 보듯 가볍다. 데뷔 15주년, 해체 위기를 겪으며 팀원 각자가 다른 길을 걷더라도 그들이 펼치는 군무와 한목소리로 외치는 “포에버원”은 아직은 '익숙함' 속에 살아가도 된다는 응원 메시지 같다. 솔직히 소녀시대의 따뜻한 춤사위가 걸크러쉬 블랙핑크(내 생각이다) 보다 반갑다.
부는 낯설다. 부가 곧 '겸손'인 세상이지만 말이다. 넉넉한 마음가짐은 우러르지만, 주머니가 빵빵한 것에는 아직 괘념치 않는다. 다만 부의 여유와 기회의 풍족함은 부럽다. 지금껏 채워져 넘쳤을 때보다는 부족해 아슬아슬한 경제사정 때문인지 부족함은 익숙하지만, 부는 낯설다.
경제난이 예고됐다. 1997년 말 아이엠에프 사태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처럼 갑작스럽지 않다. 2년 전 코로나19를 겪을 때부터 경제난은 꿈틀거렸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잠잠해지자 경제난이 그 틈을 무섭게 파고들었다. 내년 경제를 낙관하는 소식은 거의 없다. 이미 나라 안 서민 삶은 심각하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소비가 안 된다. 곧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되고, 자연스레 해고가 뒤따를 테다. 그렇게 소비와 생산이 느슨해져 고용까지 불안해지면, 경제는 더욱 수렁에 빠진다.
며칠 전 소식에 가슴이 철렁했다. 종이류 소비가 안 되자 제지업체에서 폐지 납품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폐지단가는 자꾸만 고꾸라진다. 그래도 할 노동이 폐지줍기 밖에 없기에 하루 8시간의 폐지 수집은 10시간, 12시간, 14시간으로 늘어난다. 그마저도 폐지수거가 된다는 전제에서다. 이마저도 안된다면 폐지줍는 노동은 무의미해지고, 그에 따른 노동 가치는 무에 가깝다. 폐지줍기는 지극히 '없는 자'의 몫이기에, 경제난은 그들을 낭떠러지로 몰아넣는다. 곧이어 고철수거의 어려움을 담아낸 사연도 소개될 터다.
폐지와 똑같이 소비가 안 돼 철강업체가 고철 수거를 나서지 않는다면 이를 통해 돈을 벌던 누군가의 사정은 처참해진다. 뒤이어 밥값 아끼고자 구내식당으로 대거 몰리게 된 사연들도 언급될 것이다.
밀크플레이션(우유값인상)은 시작됐다. 우유는 식생활에 큰 몫을 차지한다. 단순히 우유로 마셔도 되지만, 유가공 제품은 상당하다. 커피부터 각종 음료수와 아이스크림, 가뜩이나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우리나라 빵값도 가격 인상 기회를 맞게 됐다.
늘 경제는 가진 자의 몫이었다. 예전에는 사다리를 타고, 부의 바늘구멍을 뚫게 될 1%의 가능성이 엿보였다. 요즘은 가상화폐든,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뭐든 악착같이 요량을 부리지 않으면 어렵다. 며칠 전 고꾸라진 미국 가상화폐 소식은 우리네 가상화폐에까지 가슴 불안케 했다. 부동산은 거래절벽을 맞았고, 전세는 천정부지 금리에 꿈도 못 꾼다. 월세가 보편화 됐기에 빠듯한 월급에 돈 모으기는 더욱 어렵게 됐다. '대체 금리 인상으로 이자 수익을 거두는 현금 부자는 얼마나 될까'.
서민은 아등바등해도 경제난을 헤쳐가기 버겁다. 특히나 경제난은 낮은 데로 임한다. 곧 겨울이기에 낮은 데는 춥고도 춥고, 배고프고도 배고프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지만 없는 자가 망하면 죽음으로 내몰린다. 3년이면 경제는 바닥을 치고, 다시 고공 행진한다. 이청준의 작 <낮은 데로 임하소서>와 이를 영화화한 이장호 감독의 훌륭함에는 죄스럽지만, 이 말은 하고 싶다.
경제신이시여. 부디 이번 경제난은 낮은 데가 아닌 높은 데로 임하소서.
/이주영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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