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장, 소설가 이금이의 눈길을 끈다. 한인 미주 이민 100년사를 다룬 책에서 맞이한 운명적인 만남이다.
사진 속에는 흰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은 조선의 세 여성이 각기 양산과 꽃, 부채를 든 채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무척이나 앳돼 보이는 그들은 한 마을에서 함께 떠난 '사진 신부'들이다.
그 한장의 사진은 한인 이주여성들의 곡진한 삶으로 다시 태어난다. 1903년 1월 13일, 최초의 한인 이민자를 태운 갤릭호가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도착한다. 대한제국 정부가 최초로 인정한 공식 이민자들이다.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였던 독신 남성들은 머나먼 타국에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조국의 여성들과 사진결혼을 택한다. 그 결혼은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이어진다.
돈을 쓰레받기로 쓸어 담고, 옷이고 신발이고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그곳 포와. 그런 낙원이 따로 없다. 포와는 하와이의 한자식 표현이다. 그 미지의 땅은 기회 자체였다. 핍박한 삶과 사람들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였다. 의병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끊임없는 가난 속에 내쳐진 버들,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죽어 졸지에 과부가 된 홍주, 무당의 딸이라 동네에서 멸시와 천대 속에 자란 송화. 이들 세 명의 여성은 사진 한 장에 모든 걸 걸고, 하와이에서의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돈을 벌어 가족에게 보탬이 되고 싶었다. 봉건사회의 편견과 냉대가 없는 세상에서 제대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들은 곧 상상과 다른 현실과 맞서게 된다.
하와이의 첫날 밤은 눈물로 시작된다. 신부들을 설레게 했던 사진 속 남성들은 없었다. 현실은 상상과 너무도 달랐다. 눈물도 잠시, 그들은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삶은 녹녹지 않았다. 병든 가족을 수발하고, 밤낮으로 노동하고, 밥을 짓고 자식을 돌본다. 그들은 자신에게 숙명처럼 주어진 고단한 삶을 순응하며 살아낸다. 가혹한 노동과 현지인들의 박대를 견딘다. 이별과 갈등, 외로움과 서러움은 오로지 그들의 몫이 된다. 독립운동을 둘러싼 이념 갈등이 한인사회를 갈라놓기도 한다. 삶의 고비 고비마다, 그들을 구원한 건 희로애락을 함께 한 한인 이주민들이 끝끝내 놓지 않았던 서로를 향한 환대와 호의이다. 사람이 희망이었다.
동갑이거나 한두 살 차이가 날 뿐 비슷한 또래의 사진 신부 출신인 친구들은 계를 만든다. 계원은 모두 일곱 명이다. 그들은 가입한 단체도, 다니는 교회도, 또 종교도 다르다. 계모임 이름은 '무지개회'로 정했다.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서로 다 다르지만, 비 온 뒤 환히 비추는 무지개처럼 계원들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았다. 하와이의 상징과도 같은 '레이'는 단순한 꽃목걸이가 아니다. 누군가를 두 팔로 안는 것과 같은 모양의 레이는 사랑을 뜻한다. 버들, 홍주, 송화 등 사진 신부들의 삶은, 레이의 끝과 끝처럼 환대와 사랑으로 서로 이어져 있다.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인생의 거친 파도를 넘나든다. 우리네 엄마,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2022년은 하와이 이민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금이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결혼 이주민 여성들에게서 100년 전 사진 신부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아파한다. 그들 또한 자기 가족과 나라를 떠나는 일이 큰 모험이었을 것이다. 한국에 온 그들이 낯선 언어와 환경에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버들과 홍주, 송화 이야기가 현재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누군가에게 현재는 과거의 반복이다. 지금의 우리가 '레이'가 되어 누군가를 환영하고, 축하하고, 위로하며 따뜻하게 안아주기를 소망한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서 독자들은 우리의 삶을 구원할 환대와 호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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