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장의 사진으로 만나는 초상. 동물에게 노년을 허하지 않는 세상에서 기적적으로 노년을 맞은 동물들은, 침묵한 채 초연한 얼굴로 독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사진 한장 한장,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다. 보는 내내 먹먹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이 있다. 평안하게 살다가,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삶이다. 농장 동물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과, 당연한 그 소망과의 간극은 너무 크고 깊다.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들 때가 있다. 특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을 때에 더욱 그렇다. 좋은 책은 때론, 독자들을 불편한 감정의 영역으로 이끌곤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독자들을 세상과 마주하게 한다.
사진작가 이사 레슈코는 삶의 막바지에 이른 노년의 동물들에게 주목한다. 그의 책 <사로잡는 얼굴들: 마침내 나이 들 자유를 얻은 생추어리 동물들의 초상>은 10년간 미국 전역의 생추어리에서 마주한 나이 든 농장 동물들의 초상을 찍은 사진집이다. 이들 소, 돼지, 칠면조, 닭, 말, 양, 염소, 당나귀의 나이는 대부분 10세에서 30세 전후 사이이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나이다. 소는 생후 2~3년, 돼지는 6개월, 닭은 2개월이면 도축된다. 자연 수명은 이들에게는 누리기 힘든 사치이다. 빠르게 살찌우고, 임신으로 젖과 알을 생산해낸다. 농장 동물들의 노년까지의 삶은 보장되지 않는다. 이들의 선택지에는 '마침내 살아남아 나이 들 자유'가 없다.
생추어리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 등에서 구조된 동물들이 자연 상태에 가까운 환경에서 살도록 조성한 보호 시설이다. 동물들은 쉼터, 음식, 치료, 그리고 평화롭게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으며, 상처를 회복하고 평온한 여생을 맞이한다. 이샤 레슈코는 이곳에서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동물들의 얼굴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노년이 보여주는 고요하고 품위 있는 쇠락의 표정을 사진으로 남겼다. 동물들의 이름과 저마다의 굴곡진 사연도 함께 실었다. 생추리어에 사는 동물들은 자유롭게 놀고, 자신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이들은 시나브로 사람들의 소중한 친구가 된다. 강아지처럼 쫓아다니며 호시탐탐 무릎 위에 올라탈 기회를 엿보기도 한다.
이사 레슈코는 자신이 찍는 동물들을 각각 고유한 존재로 바라본다. 그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사진을 찍는 과정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동물들의 내면을 정확히 담아내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진흙과 그들의 배설물 속에서 보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경계는 신뢰의 관계로 바뀌어 간다. 그는 땅이나 헛간 바닥에 엎드린 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눈과 눈을 맞춘다. 그가 찍은 사진의 동물들은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동물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몸을 비틀었던 탓에 근육과 관절이 성하지 않다. 그는 만난 동물들만큼 함께 늙어갔다. 그렇게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독자들은 노년의 농장 동물들이 지닌 아름다움, 연약함, 지혜, 생명의 귀중함을 만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사로잡는 얼굴들: 마침내 나이 들 자유를 얻은 생추어리 동물들의 초상>이 담아내고 있는 동물들의 초상을 굳이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죽음에 가까운 그들의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사랑스럽기보다는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편함은 직시할 때 그 본질에 다다를 수 있다. 나이 든 농장 동물과 함께한 경험은 노년이 저주가 아닌, 사치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음을 이사 레슈코는 이 책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다짐한다. “미래의 그에게 닥칠 일에 대해 계속해서 두려워하겠지만 그래도, 이 동물들이 보여준 것과 같은 초연하고 품위 있는 태도로 최후의 쇠락을 마주하겠다고.” 불편해서 더욱 큰 울림이 있는, 다시금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성희 서운중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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