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성장하는 인류…잘하는 것도 실력
▲ 김상균 『게임인류』.

만화방이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부터 들락거렸다. 한글을 만화방에서 깨우쳤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어린 시절 만화방과 함께 나의 시선을, 발걸음을 유혹하는 것이 또 있었다. 갤러그 게임기였다. 학교 앞 문구점은 내 또래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그 요물단지는 아이들의 손때 묻은 동전을 순식간에 삼켜 버렸다. 얼마 뒤 동네에 여러 대의 게임기를 갖춘 오락실이 생겼다. 우리들의 놀이터는 골목과 운동장에서 오락실로 바뀌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다. 만화방은 인터넷 웹툰으로 바뀌었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핸드폰이나 컴퓨터 등으로 게임을 즐긴다. 그 시절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가 웹툰과 게임을 즐기는 만큼 나의 잔소리도 커져만 간다.

인간은 게임을 하는 동안 도전, 성취, 공감, 판타지, 탐험, 발견, 자기 표현 등과 같은 다양한 재미를 느낀다. 그렇지만 게임은 우리 사회에서 긍정과 부정을 쉴새 없이 오간다. 경제계는 산업의 측면에서 긍정의 입장을, 교육계는 게임중독을 얘기하며 우려를 전달한다. <게임인류>는 긍정과 부정, 그 중간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아간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부정에서 긍정으로 변화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게임을 주제로 사회의 변화를 짚어주는 경제ㆍ경영서다. 또 게임에 빠진 아이 때문에 고민이 깊은 부모에게 현실적인 해답을 제공하는 교육서의 모습도 가지고 있다. 게임의 역사부터, 그 미래의 가치까지 차근차근 우리에게 알려준다.

게임의 역사는 기원전 3500년 이전부터 시작된다. 역사에 기록된 게임은 인간에게 즐거운 경험과 다양한 배움을 주는 도구이자 성장의 동반자였다. 네덜란드의 역사문화학자인 요한 하위징아는 현생인류를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루덴스라 정의했다. 놀이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놀이의 과정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학문과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인간은 재미있게 놀 때 창의력을 발휘한다. 우리 사회는 과도한 일과 무리한 학습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였다. 언젠가부터 휴식과 놀이는 막연한 죄의식의 대상이 됐다. 일이나 공부를 과하게 하는 것은 괜찮은데, 휴식과 놀이가 과하면 문제가 되는 현실에 대해 저자는 문제가 있음을 직시한다.

저자는 <게임 인류>를 통해 게임을 잘하는 것도 실력인 시대가 됐다고 말한다. 비디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새로운 과제에 더 잘 적응한다고 강조한다. 그 이유는 비디오 게임이 주변의 변화를 더 빨리 감지하도록 두뇌를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인공지능과 협력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게임을 하면서 서로 소통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게임은 개인과 집단의 욕망이 실현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게임에서 받은 긍정적인 에너지와 집중력이 일상의 어려운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 책은 게임이 긍정적인 이유를 차고 넘치게 알려준다.

아이에게 권해주고 싶은 게임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면 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를 둘러볼 것을 권한다. <MazM:페치카>를 비롯해 교육용으로 활용하면 좋은 게임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저자는 아이와 게임을 분리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아이가 게임을 바르게 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말한다. 지나치게 상업적인 게임을 양산해 내는 기업, 자녀가 휴식 없이 공부만 하기를 바라는 부모, 게임과 도박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정부. 게임에 덧씌워진 원죄를 씻어 낼 책임과 힘은 기업, 부모, 정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인간은 게임을 만들었고, 게임은 인간을 만들고 있다. 어떤 게임을 만들고, 어떤 인간이 될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아이를 향한 잔소리가 아닌, 게임을 같이 즐기는 나를 상상해본다.

▲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
▲ 이성희 서운중학교 교감

/이성희 서운중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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