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선생님 권유로 줄타기
이젠 관객 난입조차 즐거운
진정한 '유랑예인'으로 성장
코로나로 비대면 소통 섭섭
올해 못다한 공연 내년 기약
허공에 높디높게 매단 얇은 줄 위. 때로는 사뿐사뿐, 때로는 성큼성큼 걷는 이가 있다. 안성시립 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 단원인 박지나(34) 어름사니다.
타는 사람만큼 보는 사람까지 긴장하게 되는 줄타기. 박지나 어름사니는 그런 줄타기를 20년 넘게 해왔다.
2002년 안성여자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줄타기 명인인 홍기철씨에게서 줄타기를 전수하기 시작한 지 2년 차를 맞이하고 있었다.<인천일보 2002년 8월3일자 19면 ‘바우덕이 명성 잇기 ‘외줄타기’ 비지땀’>
20년 넘게 줄과 함께 울고 웃은 박 어름사니를 <빽투더인천>이 다시 만났다.
긴 인연의 시작, 사물놀이
인생의 절반 넘게 줄과 함께 한 박지나 어름사니. 전통연희와 인연의 시작은 줄타기가 아닌 사물놀이였다.
“아홉살 때 친구를 따라서 사물놀이부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 알게 된 선생님께서 제가 활동적이고 체구도 작다 보니까 줄을 잘 타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줄타기를 권하셨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그는 직접 공연을 보고 줄타기에 이끌리기 시작했다.
“줄타기가 뭔지 궁금해서 공연을 봤는데 저 자리에서 내가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난입마저 공연이 되는 전통공연
우연히 줄을 타기 시작한 뒤로 벌써 20년도 넘게 줄을 타고 있다. 그는 “관객 난입조차 공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 전통연희의 묘미라고 말했다.
전통연희는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다. 공연을 시작하면 그곳이 무대가 되고 구경꾼들이 주변을 에워싸면 그곳이 객석이 된다.
“장터였던 것 같아요. 한 어르신이 약주를 하고 신이 나셨는지 공연장에 난입하신 거예요. ‘장단 똑바로 안 치냐’고 호통을 치시고서는 장단에 맞춰 춤추셨어요. 다른 공연 같았으면 방해했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전통연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무대가 되거든요.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전통 공연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박지나의 또 다른 이름 ‘바우덕이’
이렇게 전통연희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박 어름사니에게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바우덕이’.
바우덕이는 남사당패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1848년 안성에서 나고 자라 안성 남사당패의 일원으로 활약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남성이 주축을 이루던 남(男)사당패를 이끈 여성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박 어름사니는 “바우덕이는 거의 제 이름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아주 익숙한 이름”이라며 “어렸을 때는 그냥 여자가 줄을 타니까 그렇게 불러주시는구나 싶었지만 이제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요즘은 어떻게 해야 바우덕이의 명성에 해가 되지 않게 연희를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말했다.
후세에도 전통연희를 전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더해졌다.
“전에는 무대에 서는 게 좋아서 했는데 요즘에는 이 맥을 제 세대에서 끊기지 않게 이어나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제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줄어든 관객과의 시간
매회 소중한 공연이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대중을 만나는 자리가 극도로 적어졌다. 대면 공연이 줄어들자 자연스럽게 비대면 공연이 늘어났다.
박지나 어름사니는 이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공연할 때 옆에서 추임새도 넣어줘야 흥이 나는데 아무래도 관객이 없다 보니까 그런 부분이 부족합니다. 전통연희는 재담도 늘어놓고 관객과 소통하며 함께 만드는 공연입니다. 잘 짜여 있는 듯 안 짜여 있는 듯, 같이 만들어가는 공연인데 카메라를 보고 공연을 하려니까 예전만큼 신이 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어려운 시국이지만 틈틈이 상설공연을 올리고 있다. 경기도 안성시에는 이런 전통연희를 하는 공연장이 따로 있다.
안성시립 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은 내년 3월부터 11월까지 주말마다 안성남사당공연장에서 상설공연을 진행할 계획이다.
박지나 어름사니는 “줄타기뿐만 아니라 버나, 살판, 풍물 등 다양하게 준비했다”며 “바우덕이라는 인물을 스토리텔링해서 준비한 공연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공연을 즐기실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찾아 주시면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보실 수 있을 것”이라며 추천의 말을 건넸다.
/글=박서희 기자 joy@incheonilbo.com
/영상=김현정 기자 kyul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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