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제 내년 1월 시행

 

▲ 인천 주안국가산업단지 전경. /사진제공=인천시

▲노동자 20% 주 52시간제 합류
인천 남동구 A 제조업체는 지난 추석 연휴를 마치고 간부급 회의를 소집했다. 주요 안건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직원 규모가 100~150인 이 업체는 당장 2020년부터 해당 정책 사정권에 들었다. 회의 내용을 종합한 결과, '부바부'였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말로 '부서바이부서', 즉 부서에 따라 상황이 다르다는 의미다.
업체 관계자는 "자동화 시설이 구축된 제조 공정에선 크게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반면 인력 집중도가 높은 포장 쪽에선 충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또 영업 파트에선 저녁 술자리 등을 업무 시간으로 볼지 전문가를 찾아 문의하기로 했다"며 "사실 중소기업 한계상 이 문제 솔루션을 맡길 전문 부서가 없다. 총무과 직원이 대부분 처리하다 보니 뾰족한 수가 안 나온다"고 전했다.
'인천시사업체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을 기준으로 내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추가로 적용되는 50~299인 사업장은 2210곳으로 소속 노동자는 모두 20만8373명이다. 지역 전 산업 노동자 103만4344명에서 20.1%에 이르는 몸집이다. 현재 제도가 적용된 3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가 12만7003명으로 12.3%에 불과하던 것이 99일 후부터는 2배 가까이 증가해 32.4%까지 늘어나는 셈이다.

▲노동시간 긴 인천 … 계도기간만 바라볼 수 없다
인천 내 중소기업 중에선 주 52시간제 도입 전 '계도기간'이 부여될 수 있다고 보고 관련 정책 적응에 손을 놓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도 두 차례나 계도기간이 적용된 사례를 볼 때 경영 여건이 열악한 중소기업엔 적용이 더 소극적일 거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정치권에선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을 관련법 개정을 통해 시행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돼 왔다. 해당 사업장들의 시행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에서다.
노동계에선 전통적으로 일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인천 산업계가 모범을 보여 노동 시간 단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관계자는 "인천 산업계가 지금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건 오래 일하고 적게 받는 노동자들의 수고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노동 시간을 단축해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줘야 한다"며 "중소기업들은 경영난을 들어 무조건 안 된다는 식이다. 그럼, 계도기간이 끝나는 6개월이나 1년 후부터는 방법이 있는지 묻고 싶다. 당장 준비하겠다는 의지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지역별 노동 시간 자료를 보니 지난해 기준 인천지역 월평균 노동 시간은 179.1시간으로 광역시 중에선 대구(179.8시간)에 이어 두 번째 높았다. 경기는 178.2시간, 서울은 171.2시간으로 인천은 수도권에서도 가장 긴 시간이다.

▲노동자가 주 52시간제 경계하는 이유 … 복잡한 월급봉투 사정?
종업원 100여명 규모 서구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김선주(38)씨는 주 52시간제 도입에 반대 입장이다. 사업주도 아닌 노동자가 노동 시간 단축을 경계하는 이유는 역시 임금 감소 부분 탓이다.
선주씨는 "기본급은 한 달 200만원 중후반이지만 주말, 야근 1.5배에 연장근무까지 중첩되면 2배로 뛰어 월급이 많으면 300만원 후반까지 오른다"며 "회사 직원들끼리는 주말에 쉬면 바보라는 말까지 하는 마당에 주 52시간제로 기본급만 받을까 다들 걱정이다"고 했다.
그동안 주 68시간 노동을 최대한 활용해왔던 인천 재계도 52시간제 전반적 도입은 노동자 임금 감소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월급봉투에 초과 수당 몸집이 커 노동 시간 단축은 실질 임금 저하로 연결될 거란 주장이다. 국세청 자료를 보면 2016년 인천지역 연말정산대상 근로소득자 78만2856명 총급여(25조479억원) 가운데 야간근로수당(439억원) 비중은 0.17%다. 이는 전국 평균(0.11%) 이상이며 서울(0.2%)·경기(0.11%)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는 초과 노동을 하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급여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업장이 인천에 많다는 뜻도 된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
송도국제도시를 중심으로 강소기업들이 지역에 모여들면서 '저녁이 있는 삶'으로 가는 주목할 만한 움직임도 있다. 업계 얘기를 들어보면 2002년 문을 연 뒤, 특허 110건을 바탕으로 기술 독립 쾌거를 이루어낸 이동통신 부품 업체 '이너트론' 사무실 문에는 '퇴근할 때는 인사하지 않습니다', '퇴근할 때 눈치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맙시다', '휴가에는 사유가 없습니다', '휴가 신청 시 사유는 묻지도 말하지도 않습니다' 등이 붙어 있다.
송도에 본사를 둔 포스코건설도 지난 추석 연휴 앞두고 전 직원에게 연휴 앞, 뒤로 연차 사용을 권장하면서 간부급 직원들이 솔선수범하라고 지시했다.

▲고용노동부 현장지원단 설치
고용노동부는 50~299인 기업의 주 52시간제 안착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7월 48개 지방고용노동관서에 '근로시간 단축 현장지원단'을 설치하고, 8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지원을 시작했다.
우선 주 52시간 초과가 많은 제조업, 숙박·음식점업, 운수·창고업, 건설업을 전수 조사해서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다.
나머지 업종에 대해서도 9월 중순까지 전수 조사를 완료하고 지원 대상을 추가로 선정해, 전국 총 5000개소에 대해 현장지원을 벌이고 있다. 아울러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지 않은 기업도 현장지원을 희망하면 최대한 지원할 예정이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내년 1월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종업원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앞으로 100일도 안 남은 새해부터는 50인 이상 기업 가운데 주 52시간을 넘겨 일하는 노동자가 회사를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라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지난해 7월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처벌 유예기간을 거쳐 진행됐지만 인천 산업계 내에선 "지금부터 본게임 시작"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역 산업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계가 내년부터 정부 노동 시간 단축 정책의 주요 타깃이 되는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향한 먼 길에 도달하기까지 2020년은 성패를 좌우할 기로라는 말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