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수시장', '파출소가 돌아왔다', '그림책박물관공원' 등 지역 문화사업기획을 연일 성공시키고 있는 박찬응 군포문화재단 문화교육본부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NEXT 경기 창조오디션서 '그림책박물관공원' 대상

파출소 기획 장관상 수상

10년 석수시장 예술감독도

"상상이 없는 나라는 죽은 나라입니다."
기획하는 문화사업마다 매번 '히트'를 치는 사람이 있다.
80년대 문화운동의 주역에서 이제는 지역문화사업의 거장이 된 사람,
바로 2017 NEXT 경기 창조오디션 대상 수상작 '군포 그림책박물관공원'을 기획한 박찬응(58) 군포문화재단 문화교육본부장이다.

박 본부장은 자신의 꿈과 예술에 대해 "비어있는 공간과 삶을 채우는 예술"이라고 한 마디로 설명했다. 그가 구도심 한켠 작은 사무실에서 꿈꾸는 이 '채움의 예술'은 세상이라는 커다란 캔버스에 하나씩 옮겨지면서 사람들은 그 속에서 상상하며 지역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림책과 관련 자료들 100만건을 모으는 것이 목표입니다. 100만건의 이야기를 같이 읽고 나누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박 본부장의 멀지 않은 미래의 꿈이다.

그는 이번 NEXT 경기 창조오디션 대상 수상작 '그림책박물관공원-PUMP 조성사업'에 또 다른 상상을 모으고 싶다고 말했다. 3만여년 전 벽화가 남아 우리에게 그들의 일상을 엿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처럼 수 만년 후 세상도 글도 바뀌더라고 그림을 통해 우리에 삶을 전달해주는 그런 박물관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그림책박물관공원은 단순히 문화사업이 아닌 선대와 현재를, 후대를 잇는 공간인 것이다.

지난해 군포시에서 그에게 창조오디션에 참가할 도시재생사업 아이템 기획을 요청했을 때, 그가 생각한 건 비어 있는 공간을 상상으로 채우는 일이었다.

"군포배수지는 제가 생각하는 상상력창고에 딱 맞는 공간이었어요. 시민들에게 양질의 물을 제공해주던 공간이 양질의 상상, 그림책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바뀌는 일이었죠. 군포배수지는 그림책과 상상으로 채워진 문화예술 창작, 생산, 공유공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물을 공급하던 기능이 그림책박물관공원으로 이어져 시민들의 단단한 양분이 될 것입니다."

군포배수지는 지난 1991년 산본신도시의 개발과 함께 만들어진 곳이다. 당시 군포시는 정수장 하나 없는 작은 도시로 생활용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안양시에서 물을 끌어와야 했다. 배수지는 끌어온 물을 보관하고 집집마다 공급하면서 사람들의 생명수 역할을 해왔다.

그런 배수지가 조성된 지 3년 만에 빈 공간으로 남게 됐다. 수리산 중턱에 군포정수장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정수장에 밀린 군포배수지는 24년간 비어있었고 2009년에는 용도폐기 됐다. 그는 이곳에 상상력을 하나씩 채워가기로 했다. "예술보다 중요한건 삶이기 때문에 예술가는 사람들에게 비어 있는 곳을 채우고 망가진 삶을 메워주는, 상상을 키워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있어 '채움의 예술사'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시대가 바뀌고 마흔을 넘긴 그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게 됐고 그가 처음 자리 잡았던 안양시 만안구의 한 작업실로 돌아온다. 그 곳에서 그의 '보충하고 대리하는 예술사'는 시작된다.

"석수시장에 자리 잡았을 때 시장 점포 120여개 중 절반이 문이 닫은 채로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비어있는 공간을 예술가들이 놀 수 있는 예술창작공간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석수시장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놀 공간이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달려왔다. 그렇게 10년의 세월 동안 석수시장은 구도심 낙후지역에서 예술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그에게도 변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2013년 군포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으로 옮긴 것이다. 자리는 바뀌었지만 그에게 '보충'과 '채움'에 대한 근본은 바뀌지 않았다. 군포문화재단에서 처음 한 기획은 지구대가 생기면서 비어버린 파출소를 채우는 작업이었다. 그는 비어 있는 파출소를 시민들의 상상의 공간으로 조성해 나갔다. 그런 노력은 군포지역사회에서도 인정받았다. '파출소가 돌아왔다'는 기획으로 그는 2013년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아쉬움은 있다.

"예술에 완성은 없습니다. 특히 지역예술은 계속 변화하며 다른 누군가에 생각이 모이는 진행형입니다. 석수시장에서 10년을 예술감독으로 지냈지만, 예술이 완성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계속 진행되고 그것이 쌓이다보면 예술이 되고 관광자원이 되는 것이지요. 유럽 관광지에 가보면 너도 나도 100여 년은 넘는 역사적 공간이 예술이 되는 장소를 갖고 있습니다. 지역문화사업은 꾸준히 지켜봐줘야 합니다. 좋은 콘텐츠와 문화예술을 이어나가려면 관과 민이 합심해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지난 2002년부터 10년간 그가 석수시장에서 머물며 진행해온 '석수시장 프로젝트'도 주변에 원룸촌이 들어서면서 상권이 발달해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밀려나고 있다.

"좋은 콘텐츠도 짧은 기간에는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튼튼한 환경을 만들어 오래 이어가야 합니다. 군포시가 오랜 기간 진행해온 '책 읽는 군포시' 등의 사업은 시민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문화예술이 발전할 수 있는 튼튼한 기반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환경은 민·관이 협력해 오랜 시간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가 말하는 그림책박물관공원 사업도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림책은 인류에 인간존중, 자연, 배려 등 보편적 가치를 품고 있습니다. 인간이 꿈꾸고 있는 가치가 모이고, 수 백 만개의 이야기, 꿈이 모이는 장소는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와 가치를 창출해 줄 것입니다. 그림책박물관공원은 이런 이야기와 꿈을 이제야 현실화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


박찬응일대기

화가와 혁명사이 문화운동 전개

문화운동을 시작으로 이제는 지역문화사업분야에서 주역이 된 박찬응 군포문화재단 문화교육본부장은 혁명의 기운이 넘실대던 80년대 후반, 역사의 흐름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화가와 혁명의 경계에서 '문화운동'을 시작했다. 그림책은 글에 들어가는 삽화가 전부이던 시절, 그림책 작가들은 판매부수별로 받는 인세는 커녕 매절로 저작권을 모두 넘기면서 그때그때 삶을 이어가야 했다.
작가들은 이러한 불공평한 문제를 참지 못했고, 창작그림책을 통한 문화운동을 전개했다. 경기 중부지역에서 이런 출판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펼쳐졌다.

창작그림책 출판문화운동으로 세상은 조금씩 변화했다.
88년도에는 처음으로 그림 작가들이 만든 창작그림책 '구름가족 이야기'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는 기존에 서양에니메이션을 그림책으로 만든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 노란머리, 파란 눈의 외국인이 나오던 그림책을 보던 아이들에게 우리의 정서와 미감이 살아있는 창작그림책들을 하나 둘 씩 보여줄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런 경기중부지역의 창작그림책운동이 이번 그림책박물관공원 조성사업의 근간이 되었다. " '혼자 꾸는 꿈은 몽상에 불과하지만 함께하는 꿈은 또 다른 현실의 시작이다'는 체게바라의 좌우명처럼 함께 꿈꾸고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