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임영인

지난주에는 '책과 사람'을 쉬었다. 본 기자의 글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독자들께 정말 미안하다.

코레일이 이번 달부터 서울역에 기거하고 있는 노숙인들을 서울지역 쉼터 세 곳으로 옮겨가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한다. 말이 유도이지 까놓고 얘기하자면 역밖으로 내쫓겠다는 뜻이다. 역시 말은 쉽게 해야 이해가 빠르다.

KTX도 목적지까지 제대로 운행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수로 노숙인들을 쉼터까지 유도하겠는가.

오늘 이야기의 주제에서 벗어난 소리지만 우리가 김연아나 박태환의 성적을 두고 일비일희 하는 이 순간 우리 주변 거리에는 적어도 김 양과 박 군에게 쏠리는 시선의 백만분의 일이라도 좋으니 따뜻한 눈길을 던져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서울역의 노숙인일수도 있고, 위장폐업과 정리해고의 칼바람에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일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 주 '책과 사람'에선 노숙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노숙인의 삶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책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를 소개하련다. 이 책의 저자는 노숙인들의 재활을 위해 헌신해온 임영인 신부다. 책을 펴낸 곳은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책만을 출판하기를 고집하는 도서출판 '삶이보이는창'이다.

저자 임영인 신부는 대학에 다니던 중 광주학살을 알리려는 유인물을 배포한 혐의로 1981년 체포되어 징역을 살았다. 이후 천주교 노동사목협의회에서 일했고 부천에서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운동을 했다.
성공회대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인천 송림동, 수원 세류동에서 10여 년간 빈민사목을 했다. 현재 서울역에서 노숙인사목을 하고 있다. 이 정도까지만 소개해도 이분의 삶이 존경스러울 거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는 임영인 신부가 노숙인사목을 하면서 만났던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에는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노숙인이 된 사람부터 해고와 가정폭력으로 노숙인이 된 평범한 가장과 여성까지 다종다양한 노숙인들이 등장하고 있단 얘기다.

독자들, 우리가 반성해야 할 지점에 하나인데 우리 눈에는 그저 노숙인이 더럽고 냄새나는 부랑인으로 보일 뿐이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삶을 누려왔고 누릴 권리가 있는 인간이란 걸 망각하고 있는 점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노숙인에 대한 편견들이 사라진다.

그 편견들이란 무엇이냐? 첫째, 노숙인들은 역 주변에나 몰려있을 뿐 몇 안 된다는 편견이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에 콩떡 만만에 팥떡 같은 소리다. 노숙인이란 '주거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빈곤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전국적으로 이런 노숙인은 최하 5∼10만 명에 달한다. 놀랐는가? 그렇다면 그 많은 노숙인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살지? 이들은 여인숙, 쪽방, 고시원, 사우나, 만홧가게, PC방, 기도원 같은 곳에서 살고 있다.

자 이제 '노숙인'이라는 사회과학적 개념이 머릿속에 정리가 되었는가? 본 기자, 합판으로 비바람만을 막은 옥탑방에서 월세 10만원으로 살고 있으니 노숙인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아, 갑자기 서러워진다.

두 번째, 노숙인들이 일을 하기 싫어하고 게으르다는 편견이다. 과연 이들은 천성적으로 게으름뱅이일까? 절대 아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들도 한때는 자영업자, 회사원, 노동자, 학생, 주부, 가장이었다. 대다수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노숙인이 된 건 우리 사회의 사회보장체계가 그만큼 부실하다는 얘기다. 즉 현재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지속되는 한 독자나 본 기자도 그리고 우리들의 자녀들도 언젠가 노숙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들도 인간다운 삶을 그리워하고 사랑에 굶주려 있다는 점이다. 단지 이 같은 인간기본권이 사회로부터 박탈되었을 뿐이다.

본 기자 이 책에 저 밤하늘에 떠있는 무수한 별만큼의 평점을 준다. 그러니 독자들, 이 책을 꼭 사서 봐라. 후배 기자들도 꼭 새겨 읽기를 부탁한다.

/조혁신기자 mrpen@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