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순환시설, 잿빛 외투 벗고 주민 곁으로

덴마크 코펜하겐 도심 아마게르 바케
85m 전망대·스키 슬로프 설치 인기

프랑스 파리 인근 이시물리노 이쎄안
소각 후 폐기물 도로 공사 재료 활용

'소각장이 아닌 자원순환시설.'

인식 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더는 폐기물을 태워 버리는 장소를 소각장이라 부르지 않고 자원순환시설이라 한다. 명칭의 전환과 함께 시설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하늘 높이 솟은 굴뚝은 사라지고, 잿빛 콘크리트 옷이 벗겨졌다.

유럽연합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세계 최초 탄소중립 도시를 선언한 코펜하겐 중심지엔 아마게르 섬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자원순환시설 '아마게르 바케(Amager Bakke)'가 당당하게 서 있다. 프랑스 파리 외곽 센강 옆으로 자원순환시설 '이쎄안(Isseane)'이 감쪽같이 숨어있다.

과거 소각장의 모습에서 탈피한 아마게르 바케나 이쎄안은 기능도 다변화했다.

단순히 쓰레기만 태우는 게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지역의 에너지 생산원이 된 것. 나아가 주민들에게 여가 공간까지 제공하면서 주민 곁의 시설로 다가가고 있다.

 

▲소각장에서 자원순환시설이 되기까지

아마게르 바케와 이쎄안은 소각장에서 자원순환시설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닮았다.

두 자원순환시설 모두 기존 시설 노후화로 변화가 필요했고, 환경 감수성이 높아진 시민들의 수용성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현재 한국과 같이 주민 수용성 확보를 얻기 위한 진통을 겼었던 것. 주민들의 반발을 잠재운 뾰족한 묘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오랜 시간 주민과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갔을 뿐이다.

▲ 덴마크 코펜하겐의 아마게르 바케 전경.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 덴마크 코펜하겐의 아마게르 바케 전경.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아마게르 바케의 경우 노후 발전시설 인근에 건립됐다. 40여년간 전기의 생산뿐만 아니라 난방에 사용할 수 있는 온수 공급을 담당했던 발전소가 한계수명에 다다르자 덴마크 정부는 새로운 열병합발전소 건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발전소는 인근 주민들의 지지 없이는 건립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고, 덴마크 정부는 주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계가 필요했다. 발전소를 대중에게 개방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시작한 공모를 통해 지금의 아마게르 바케가 탄생했다.

한 코펜하겐 주민은 “처음에 발전소를 짓는다고 했을 때 당연히 주민들의 반대는 있었지만, 원래 이곳은 쓰레기 더미들이 쌓여있던 곳이었다”라며 “당시 지역 주민들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고, 정부에 지속해서 주민들과 소통해 설계부터 함께했다. 처음엔 걱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훌륭한 시설이 됐다”고 말했다.

▲ 프랑스 이쎄안 자원순환시설의 모습.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 프랑스 이쎄안 자원순환시설의 모습.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이쎄안도 60년대 지어진 기존 소각장이 노후화돼 새로 지은 건데,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지역 주민들은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는 소각장 건설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파리시와 인근 80여 개 지자체는 조합을 만들어 설계 단계부터 주민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했다. 그 결과 쓰레기 집하장과 소각로는 깊은 지하로 설치됐고 각종 첨단 정화 기술을 적용해 유해 물질과 냄새를 완벽히 걸러냈다.

소각장 완공 후에는 30분마다 주변 공기 질을 측정해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소피엔 엔란달루시 파리광역권쓰레기처리조합 부대표는 “저희도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이 시설”이라며 “시스템을 통해 굴뚝에서 나오는 먼지나 중금속, 오염물질 같은 것을 수시로 확인하고 주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 지난 2월 방문한 덴마크 코펜하겐의 아마게르 바케. 지역 주민들을 위한 스키 슬로프가 설치돼 있다.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 지난 2월 방문한 덴마크 코펜하겐의 아마게르 바케. 지역 주민들을 위한 스키 슬로프가 설치돼 있다.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아낌없이 주는 자원순환시설, 주민과 관광객에게 '인기'

“혐오시설이 아닌 우리를 위한 시설이 됐습니다.”

지난 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만난 지역 주민 A(53)씨는 이렇게 말했다. 오염 물질을 내뿜던 자원순환시설이 지금은 지역 주민들에게 난방과 여가 공간을 제공해주면서 지역주민들의 인식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상상 못 할 일이지만 아마게르 바케는 지역주민들이 편하게 찾는 '소풍' 장소다. 85m 높이의 전망대에서 지역 주민들은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즐긴다. 그 위로는 굴뚝에서 흰 수증기가, 아래에서는 쓰레기가 태워지고 있는데 말이다.

쓰레기를 태우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력과 열로 주민 60만명과 기업 6만8000곳에 전기와 난방을 공급한다.

주민 페르 니리케(Per Nylykke·53)씨는 “과거 쓰레기를 모아두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변화해 랜드마크가 됐다”라며 “스키를 평소에 좋아하는데, 지역 인근에 스키장이 없어서 이곳을 종종 찾곤 한다. 주변에 스키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데리고 와 이곳을 소개해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코펜하겐 주민뿐 아니라 인근 국가들에서도 이 시설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연간 5만여 관광객이 아마게르 바케를 찾는 것으로 확인됐다.

독일에서 온 폴(paul·19)씨는 “덴마크에 가면 이곳을 가봐야 한다는 친구의 말에 구경하러 왔다”라며 “냄새가 나지도 않고 이곳이 폐기물을 처리하는 발전소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독일에도 있으면 이런 시설이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프랑스 이쎄안 자원순환시설 홍보관에 마련된 소각재. 이 소각재는 여과 후 도로 기초 재료로 사용된다.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 프랑스 이쎄안 자원순환시설 홍보관에 마련된 소각재. 이 소각재는 여과 후 도로 기초 재료로 사용된다.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자원순환시설, 주민들 사이로

프랑스의 자원순환시설 이쎄안은 주민들과 이웃이다.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서 10분가량 차를 타고 나오면 있는 이시물리노시(市)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화웨이 등 글로벌 기업들의 사무실이 줄지어 있다. 그 앞으론 센강이 흐르고, 저 멀리 에펠탑이 보인다. 이 가운데 초록색 넝쿨로 둘러싸인 한 건물이 눈에 띈다. 바로 이쎄안 자원순환시설이다. 굴뚝 없는 자원순환시설로 유명한 이곳은 센강의 수심 30m 아래로 소각 시설을 숨겼다.

파리시에 거주하는 B(32)씨는 “이런 곳에 자원순환시설이 있는지 몰랐다”라며 “평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대다수가 모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아마게르 바케와 같이 이쎄안도 지역 주민들에게 난방을 제공한다.

▲ 프랑스 이쎄안 자원순환시설 내 쓰레기 처리 모습.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인근 주민 120만명이 매년 배출하는 생활 쓰레기 53만t가량을 처리하고 있는 이쎄안은 폐기물을 태우면서 나오는 증기 중 일부를 난방이나 온수로 만든다. 이는 약 7만9000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특히 소각 후에 나오는 폐기물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인상 깊다. 소각재는 여과 과정을 거쳐 도로 공사를 위한 기초 재료로 사용되곤 한다.

한국의 경우 쓰레기를 태우고 난 후 나오는 소각재를 땅에 묻곤 한다.

소피엔 엔란달루시 파리광역권쓰레기처리조합 부대표는 “홍보관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곳에는 소각재를 전시해뒀는데, 보이는 것과 같이 쓰레기를 태우면 이런 잔재물이 나온다”라며 “이걸 분리해서 도로 기초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쓰레기를 태우면서 나오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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