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예상했던 상황이지만 남북한을 경계로 한반도 주변에서 '신냉전체제'가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그동안 평화와 협력을 위해 총력을 쏟았던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상당히 우려할 수밖에 없다. 국가안보가 더 위태로울 수밖에 없을뿐더러 자칫 경제대국의 공든 탑도 흔들릴 수 있기에 우리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저 막연한 우려가 아니다. 시야를 조금만 더 넓혀서 주변정세를 보노라면 상황은 예상보다 더 어렵다. 냉전체제의 마지막 분단국가가 냉전 종식 이후 불과 한 세대 만에 다시 신냉전체제의 최전선으로 내몰릴 줄은 몰랐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좀 더 근본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지난 8일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 3국 국방장관들이 일본과의 국방협력을 핵심으로 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최첨단 군사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일본과 협력한다는 '필러2(pillar2)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통합억제 전략이 더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일본은 최첨단 국방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국방강국으로 자리매김할 토대를 구축한 셈이다. 마침 일본 기시다 총리가 미국을 국빈 방문하고 있다. 양국 간 최첨단 국방기술 협력은 물론 일본 자위대의 위상과 역할도 한 층 확대될 전망이다.

비슷한 시간인 9일 러시아 외무부는 푸틴 대통령이 올해 중국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중국을 방문 중인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시진핑 국가주석을 예방한 자리에서 이를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중러 간 안보를 비롯한 전략적 협력관계가 더 발전될 것으로 보인다. 공동의 대척점에 있는 미국에 대응하는 의미가 강하지만 양국의 군사협력은 결국 북한의 동참을 끌어낼 것이다. 미국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안보협력에 북한까지 동참할 경우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남북한이 신냉전체제의 최전선에서 다시 대결하는 모양새다. 이로 인한 후폭풍은 안보 문제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경제적 불확실성은 물론이고 정치, 사회적 갈등과 불안은 자칫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먼 얘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일이다.

중국은 올해를 북한과의 수교 75주년으로 내세우며 양국 최고 지도자가 확정한 '중·조 우호의 해'라고 강조하고 있다. 조만간 이를 기념하는 평양에서의 개막식에 중국 대표단이 참석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는 되짚어 봐야 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점점 더 강고해지는 신냉전체제 앞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얼마나 되는가. 자칫 백여 년 전처럼 강대국의 패권 싸움에 휘말려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도 진중하게 살필 대목이다. 우리를 향해 휘몰아치는 외풍이 생각보다 더 가혹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평화는 평화로울 때 지켜야 한다.

▲ 박상병 시사평론가
▲ 박상병 시사평론가

/박상병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