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인천은 1883년 개항 후 8·15 광복 전까지 물밀듯 들어오는 외국 문물과 함께 각종 문화시설에서도 매우 돋보이는 도시였다. 바야흐로 그 시절에 문화예술 전성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제물포를 통해 서양음악이 도래했고, 공연과 연주 등을 선보이는 공간이 자리를 잡았다. 국내 최초의 극장이자 공연장으로 일컬어지는 협률사(協律舍·1895년 개관)가 대표적이다. 협률은 조화를 이루는 음악이란 의미로, 지금의 공연 활동을 말한다.

협률사는 이어 신파극 '육혈포 강도' 인천 공연을 올렸던 혁신단 대표 임성구의 제안에 따라 1912년 축항사(築港舍)로 개칭됐다. 1921년엔 애관(愛館)으로 다시 명칭을 변경했다. 협률사는 오늘날 애관극장의 전신이다. 이 공간에 힘입어 극작가 진우촌·함세덕, 연기자 정암, 무대장치가 원우전 등 기라성 같은 인천 문화계 인물들이 배출됐다. 개항 이래 격동의 세월을 견디며 인천 문화예술의 큰 축이었다고 여겨진다.

이런 훌륭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 포격으로 인천은 쑥대밭으로 변했다. 대부분의 문화시설이 파괴됐다. 공연과 연주 등이 변변치 못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서울 중심의 흐름으로 한동안 인천의 문화예술은 침체기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문화예술을 즐기려고 가까운 서울로 나들이를 가는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러다가 인천문화예술회관(남동구 구월동)이 개관함으로써 달라지기 시작했다. 1994년 4월8일 문을 열었으니, 올해 개관 30주년을 맞은 셈이다. 공연장을 비롯해 전시실과 회의실 등으로 이뤄진 이 곳은 개관 이래 인천의 대표적 문화공간 위치를 자랑해 왔다. 1332석 규모의 대공연장과 486석의 소공연장, 440석의 야외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이제는 인천 문화예술의 요람으로, 시민들의 정서함양과 지역 문화예술 창달을 위해 힘을 쏟는다. 시립교향악단·시립합창단·시립무용단·시립극단 등 4개 예술단을 운영한다.

인천문화예술회관이 개관 30주년을 맞아 지역 곳곳을 누비는 공연을 마련해 시민들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휴업 상태인 공연장을 대신해 자치구 문화예술회관과 손을 잡고 질 높은 공연을 이어간다. 공사를 순차적으로 완료하는 데 맞춰 뜻 깊은 사업 계획도 세웠다. 예술회관 30년 역사를 담은 사진과 자료를 정리한 전시 '기억전'을, 한때 대한민국 록음악의 중심지였던 인천을 회고·전망하는 기억콘서트 '더 씬' 등을 열 예정이다. 아무튼 인천문화예술회관이 지역·계층·세대를 아우른 창조적인 무대로 시민과 소통하며 인천 문화예술의 선구지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