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다리 골목길. /사진=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 캡처

2017년 배다리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얼마 뒤, 동네에 허름한 통닭집이 생겼다. 며칠 뒤 아내와 치맥을 하러 갔는데 그새 다른 통닭집으로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지금까지 갈비인지 통닭인지 그 맛을 모르는 '수원왕갈비통닭'. 영화 '극한직업' 촬영 세트였다.

이병헌 감독은 지난해 또다시 우리 동네를 찾아 영화를 찍었다. 이번엔 닭강정. 백정닭강정 세트가 세워지고 '백정이 어딜 양반한테 덤비냐는' 양반댁닭강정도 골목에 들어섰다. 하지만 이번엔 속지 않았다. 그래, 또 뭔가 찍는 거겠지.

'극한직업', '도깨비', '인랑', '모범형사', '무법변호사'를 비롯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배다리에서 촬영되었다. 이 정도면 영화의 메카, 자연산 야외 스튜디오다. 이제는 어지간히 유명한 배우가 아니라면 구경 나가기도 귀찮다.

배다리가 영화 메카가 된 것은 인천영상위원회의 유치와 홍보 덕이 크다. 해가 지면 인적이 드문 장점이라면 장점도 있어 오래된 원도심 이미지를 찍기에 알맞은 곳일 것이다. 촬영 때문에 주민은 귀찮지만 이를 통해 동네를 찾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참을 수 있다.

최근 배다리 헌책방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을 만났다. 헌책방 골목이 계속 존속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지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나눴다. 헌책방 골목의 문화적 가치에 이견이 있을 리 없고, 고민 끝에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의견을 내놓았다.

어딜 가도 걷기 쾌적한 곳이 마음에 남는다. 산책하듯 걸으며 다양한 가게를 들러보고 결국 그 길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배다리에 그런 이야기는 차고도 넘친다. 어떤 영화촬영장소 말고도 말이다.

차가 인도를 가로막고 불법 주정차된 차를 피해 요리조리 다녀야 한다면 누가 오겠나. 그 길에 무엇이 있다 한들 얼굴부터 찡그려지지 않을까 이야기를 나눴다. 길이 통해야 사람이 통한다. 걷는 길이 살아야 가게도 산다. 지금 배다리는 한 걸음도 걷기 힘들다.

/봉봉 <단독주택에 진심입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