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북한의 수도 규정이 바뀐 것은 1972년이다. 그해 12월 이른바 사회주의 헌법을 공포하면서 1948년 헌법부터 '서울'이었던 수부(수도)를 '평양'으로 공식적으로 바꾸었다. 전쟁을 치르고 나서도 20년 가까이 한반도의 중심이 '서울'이며, 기필코 통일을 이루어 서울을 통일국가의 서울로 삼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분단이 가시화할 무렵부터 북한은 한 번도 통일을 포기한 적이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통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이념의 한 축이자, 국가목표 중 하나로 확고해졌다.

'민주기지론'은 해방되던 해 겨울부터 북한 내부에서 확산하였다. 미-소 양국 군대가 주둔한 현실에서 북한에 확고한 '민주기지'를 건설해 남한을 해방하자는 게 '민주기지론'의 골자였다. 1946년 들어 찬탁-반탁의 거센 소용돌이가 한바탕 지나가고,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 결렬로 분단이 확실해지면서 '민주기지론'은 국가건설의 동력으로 작동했다.

민주기지론은 '국토완정론'으로 발전해 나갔다. 외세의 개입으로 하나의 국가를 이루지 못했으나 민주기지인 '조선'이 전 국토를 통일하여 근대 국가를 이루자는 게 국토완정론이다. 남한은 북진통일론으로 맞섰다. 북쪽으로 진격하여 사회주의 오랑캐를 몰아내고 통일국가를 이루자는 주장 역시 대한민국 국가건설의 목표로 설정되었다. 국토완정론과 북진통일론은 급기야 전쟁을 불러왔다.

북한이 올해 들어 대남기구들을 대거 폐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연말 “북남 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며 “언제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언명한 뒤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북측본부 등이 차례로 정리되고 있다. '우리민족끼리'도 사라졌다. 심지어 대남방송인 평양방송도 송출을 중단했다.

남과 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했다. 북한이 새롭게 들고나온 '적대적 두 국가론'은 약 30년간 어찌어찌 지속한 이 패러다임을 폐기하자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동안 '통일' 혹은 '적화통일'이 차지했던 북한의 국가이념, 국가목표의 자리를 무엇이 대신하게 될까. 엄연한 분단국가에서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성동격서일까, 정면돌파일까. 평화를 뒤흔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