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아침 나는 경기도교육감 선거 관련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첫 뉴스 자막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그 큰 배가? 그럴 수도 있나? 잠시 후 전원구조 됐다는 소식이 떴다. 그러면 그렇지. 안심하고 출발했다. 하지만 토론회장에 도착했을 때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토론회는 무산됐다. 그날 오전의 상황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엄청난 사건은 화인(火印) 같은 기억을 남긴다던가.

사건 당일 세월호의 의미를 알아차린 건 아니다. 집에 돌아와서 방송을 보고 또 보았다. 찾을 수 있는 기사는 모조리 읽었다. 그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진상은 고사하고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를 알아차리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이후 몇 년간 관련 보도와 글들을 꽤나 열심히 찾아보았다. 많이 울었고, 크게 분노하기도 했다. 그리고 10년. 어떤 아픔은 애써 잊었고, 어떤 슬픔은 짐짓 모른 체했다. 기억은 시나브로 무뎌졌다.

“…내 손에 쥐인 낯선 얼굴이 낯익다/ 잊혔던 그대를 누구라고 부를까 … 그대를 잊었다가 서릿발 언덕에 선다…” 정원철 시인(전 시흥문화원장)의 시 '연 날리기'라는 시구(詩句)가 새삼스럽다. 20년 전에 쓰인 시여서 세월호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한재필 작곡가가 곡을 붙인 가곡을 듣노라면 나는 왠지 세월호가 떠오른다. “꿈길에 닿았다가 계절의 끝으로 사라진 그대/ 곤두박질치다가 기어이 하늘로 올라갔지/ 오늘도 내 손을 떠나 바람길 타고 오르는 그대/ 매 겨울 새 얼굴의 그대를 난 누구라 부를까…”

지난 일요일(14일) 수원 화성행궁 광장에 '진실의 연'이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수원지역 기억과 약속'이라 새겨진 연 304개를 하늘로 띄우는 행사였다. 주최 측은 노란 리본과 함께 이태원 참사를 상징하는 보라색 리본도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세월호의 진실이 정확히 인양되었더라면, 사고 관련자들의 책임을 제대로 물렸더라면, 그래도 보라색 리본이 만들어졌을까.

가곡 '연 날리기'를 한 번 더 들었다. “다시 낯익힌 그대를 그대를 보내네/ 길게 길게 실 늘려 그대를 잡고서.” 모든 연은 꿈과 소망을 싣고 날아오른다. 진실의 연은 계속 떠올라야 한다. 그래야 나처럼 기억이 무뎌진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자신을 스스로 돌아본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다는 생각이 들어요. 해결된 것이 없는데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피해자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길 바라요.”(<시사IN> 865호 세월호 생존자 장애진씨의 말).

▲양훈도 논설위원.
▲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