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전오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권전오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원

내가 대학에 들어갔던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학가에는 지금과 다른 막걸리 문화가 남아 있었다. 일과가 끝나고 찾은 다소 칙칙한 분위기를 한 막걸릿집에는 이모님이라 불리는 주인께서 편안하고 반가운 표정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막걸리에 파전, 또는 짬뽕 국물을 시키고 몇 순배의 막걸리를 털어 넣고 나면 너나없이 노래를 불렀다. 반주는 단순하게 탁자를 치는 정도였고 신이 나면 쇠젓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젓가락 장단에 맞춰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다. 2차, 3차를 지나고 나면 길거리에서도 어깨를 걸고 고성방가를 했다. 막걸리 문화는 이후 맥주가 대세가 되면서 차츰 사라졌다. 마른안주에 맥주를 마시며 젓가락으로 탁자를 치기는 이상했던지 고래고래 집단으로 소리를 지르는 문화는 사라진듯하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호연지기를 기르는 방법이 나와 있었다. 산천을 유람하며 높은 곳에 올라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다. 높은 산에서 먼 산봉우리들을 보며 큰 소리로 소리치면 가슴이 뻥 뚫리고, 큰 뜻을 가슴속으로 품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90년대 초쯤, 개발과 보전이 첨예한 사회 이슈가 되면서 보전론의 선두에 서셨던 나의 지도교수님을 위시해 많은 생태학자가 산 위에서 소리치면 새를 비롯해 많은 생명이 위협을 느낀다며 산 위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는 분위기를 유도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찾는 산 정상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요란한 야호 소리는 등산객에게 불편한 소음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산 정상에서 야호를 외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술집에서도, 산꼭대기에서도 소리칠 수 없어지면서일까? 자연스레 노래방이 대유행했다.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고 호랑이처럼, 사자처럼 포효하지만 방음장치가 잘 된 방을 벗어나면 그 소리는 아쉽게도 멀리 울려 퍼지지 못한다. 호랑이나 사자뿐 아니라 고양이나 닭들도 소리친다. 소리치는 것은 모든 동물의 본능이 아닐까? 노래방이나 혼자 운전하는 차 안에서만 소리칠 수 있는 우리는 어떤 면에서 울화가 가슴에 쌓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골에 있는 처가에서 산책했다. 추운 겨울이라 눈 쌓인 강변엔 사람이 없다. 호젓한 분위기에 콧노래를 부르다 신이나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깜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본다. 도시에서 몸에 익은 조심성이 시골에서도 여전하다. 하천 너머에 몇 채의 농가가 있고 반대편에는 큰 도로가 있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도로에서 나는 소음을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맘이 편해진다. 이곳이야말로 고성방가를 해도 되는 곳이구나!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강변, 차들이 내달리는 도로 옆이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크게 노래를 불러본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고 해방감을 느낀다. 호랑이처럼, 사자처럼은 아니어도 큰 소리를 내지르고 싶다. 눈치 보지 않고 대자연 속에서 소리를 지르고 싶다.

많은 사람이 함께 사는 도시에서는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수많은 규칙이 우리를 옥죈다. 호연지기를 기르는 데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가슴 속에 맺히는 울화를 털어내기 위해서는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소리치는 곳이 도시에도 있으면 좋겠다.

인천은 땅이 넓다. 바닷가 도시다. 넓은 바다를 보며 소리 지를 수 있는 곳을 찾아보면 어떨까? 우선 인천둘레길, 강화나들길 코스에서 바닷가를 따라 걷는 길 중 맘껏 소리쳐도 되는 코스를 찾아보자, 호랑이처럼 포효할 수 있는 길을 따라가며 도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자연 속에 날려 보내면 좋겠다. 최근 출산율이 낮아져 걱정이라는데 그 원인이 도시생활이 주는 스트레스가 누적되면서 생긴 반작용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권전오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