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열 애스컴시티뮤직아트페어 대표·문학박사.
▲ 이장열 애스컴시티뮤직아트페어 대표·문학박사.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이다. 정부가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해 만든 동영상에 래퍼가 등장한다. 한미동맹 70년이 한국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막도 흘려 나온다. 이 동영상은 한국대중음악의 태동과 확장이 한미동맹으로 가능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대중음악의 태동지와 발전을 이끈 장소를 꼽아야 한다면 국내 최대 미군 기지였던 인천 부평 애스컴(Army Service Comanmd) 미군기지를 빼놓을 수 없다. 부평 애스컴 미군기지는 1950년대 초반부터 1970년 중반까지 캠프 마켓, 캠프 그렌트 등 7개 미군 캠프가 가동된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였다. 지금 부평 전체가 애스컴 미군기지나 다름이 없었다. 미군이 '애스컴시티'로 명명한 이유도 이런 규모 때문이다.

여기에는 비행장, 보충대, 121병원, 공병대, 통신부대, 군수지원부대가 운영되었다. 미8군 사령부는 서울 용산에 있었고, 대부분 미군 전략 자산과 병력은 부평 애스컴 미군기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애스컴 기지에는 사병(EM)클럽, 부사관(NCO)클럽, 장교(Office) 클럽 등 24개 이상의 영내 클럽이 있었다. 일과가 끝난 애스컴기지 소속 미군들은 영내 클럽이나, 기지 옆의 신촌과 삼릉 일원에서 영업했던 24개 영외 미군클럽에서 캄보밴드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낯선 땅 한국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달랬다.

부평 애스컴시티 영내 클럽에는 캄보밴드(4~6인조, 브라스 악기 포함)가 중심이었다. 캄보밴드는 미국에서 유행한 재즈, 블루스, 컨츄리, 스윙을 연주해 젊은 미군들의 애환을 달랬다. 여기서 한국 밴드 음악이 새롭게 탄생하였다. 애스컴시티 뿐만 아니라 한국 청년으로 구성된 캄보밴드들이 의정부, 파주 등 미군 클럽에서 연주하면서 한국대중음악사를 새롭게 썼다. 한국 청년 뮤지션들은 미군클럽에 서기 위해 미8군이 실시하는 밴드 오디션을 통과해야 했다. 그들은 당시 미국에서 유행한 최신 음악을 듣고 채보를 통해서 악보를 만들어서, 맹렬하게 악기 연주를 연습해야만 했다. 엄격한 미8군 오디션을 통과한 한국 청년 밴드들의 연주력은 미군들도 감탄할 정도로 탁월했다. AFKN으로만 들었던 미국 최신 음악을 캄보밴드들이 생생하게 그대로 연주하는 풍경을 본 미군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950년대 초반부터 미8군 오디션을 통과해 부평 애스컴시티 미군기지 클럽에서 연주한 한국 청년들은 한국 밴드 음악을 처음 시작한 빛나는 역사를 일궈냈다. 한국 밴드 음악은 부평에서 시작했고, 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은 날개를 단다. 이는 K-pop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게 된 밑거름이다. 그런데 한국 밴드 음악 시발점으로서 인천 부평이 지닌 한국대중음악사에 미친 영향과 가치가 저평가 받고 있다.

최근 1960년대 부평 애스컴미군기지 클럽에서 캄보밴드 '파이오니아' 멤버이자 트럼펫 연주자로 활약한 차영수 선생님이 81세로 돌아가셨다. 차영수 선생님은 한국 밴드 음악 초창기 멤버였다. 살아계실 때 부평에서 펼쳐진 한국 밴드 음악 활동을 기록하는 작업이 없었던 것이 너무 아쉽다.

인천 부평이 한국 밴드음악 태동지로 K-pop 밑거름으로서 한국 대중문화를 성장시킨 것을 인천 부평은 깨닫기 바란다.

/이장열 애스컴시티뮤직아트페어 대표∙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