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에서 시민들이 열차 충돌 사고와 관련해 정부와 철도 회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심야 열차 정면충돌 사고가 발생한 지 사흘째인 3일(현지시간) 정부와 철도회사를 향한 분노로 그리스 전역이 들끓고 있다.

일부 도시에선 격화된 시위 속 시위대와 경찰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스 정부에선 이번 사고를 "비극적인 인간적 실수로 일어난 일"이라며 교통부 장관 사임과 열차 선로 변경 지시에서 실수를 저질러 사고의 직접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지목된 역장 구속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려 애쓰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스 국민은 이미 지난 수십년간 정부에서 철도시설 유지와 시설 개선작업 등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해왔고 5년 전 민영화한 뒤에도 관리·감독 의무를 게을리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그리스 철도망 운영을 맡은 민영기업 헬레닉 트레인의 아테네 본사 앞에서 시위대 수천 명이 모여 이를 규탄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본사 건물 외벽에 붉은색으로 "살인자들"이라 썼으며 "사고가 아닌 살인이었다"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일어난 일은 사고가 아닌 범죄",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속 무관심할 수 없었다", "어떻게 2023년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화가 치민다" 등 분노를 쏟아냈다.

사고 희생자들을 위한 촛불집회가 열린 아테네 도심 의사당과 인접한 신타그마 광장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는 일도 벌어졌다.

약 3천 명이 참가한 이 시위에서 시위대는 돌과 화염병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탄과 섬광 수류탄을 발사했다.

그리스 철도노동자들은 그간 철도안전을 간과해 온 정부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전날 전국 사업장에서 파업을 개시한 데 이어 이틀째 일터에 복귀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48시간 동안 추가로 파업을 지속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고 후 사흘간 수습 과정에서 발견된 시신은 57구이며, 이 중 5명은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 측 설명에 따르면 충돌로 인한 충격으로 탈선한 객차가 화염에 휩싸이면서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맨눈으로 신원 파악이 가능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신원이 밝혀진 52구는 거의 모두 DNA 조사를 거쳤다.

이번 사고로 그리스에 국가 추모 기간이 선포된 가운데, 정치인들은 서로 상대 정당을 비난하면서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최근 10년간 양대 정당인 중도우파 '신민주당'과 좌파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번갈아 집권했는데, 신민주당 지도자인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는 사고 다음 날인 이달 1일 현장을 방문한 후 대국민 TV 연설에서 "(그리스에서) 전례가 없는 끔찍한 기차 사고"라고 부르며 철저한 조사를 다짐했다.

이번 사고는 지난달 28일 밤 여객열차와 화물열차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아테네에서 출발해 테살로니키 방향으로 달리던 여객열차에는 승객 342명과 승무원 10명이 타고 있었는데 희생자 대부분은 주말과 휴일이 이어진 황금연휴를 즐기고 돌아가던 20대 대학생이었다.

/노유진 기자 yes_uj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