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여 년의 시간을 품은 빈티지 풍의 괘종시계

박물관 집무실(관장실) 한쪽 벽에 낡은 괘종시계가 걸려 있다. 하루 딱 두 번만 시간이 맞는다. 선친이 황해도 소학교 시절인 1938년쯤 경성으로 수학여행 갔다가 사 온 것이라고 오래전 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

숫자판 아래 'MADE BY EIKOSHA, TOKYO, JAPAN'라고 쓰여 있다. 선친은 그 시계를 마치 아기 업듯 광목천으로 등에 둘둘 묶고 집으로 달려 들어왔다고 한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댕댕댕” 소리가 났다. 6·25전쟁 때 작은 배를 타고 남쪽으로 피난 오면서 몇가지 세간살이를 들고 나왔는데 괘종시계가 그중 하나였다. 어렸을 적 우리 집 마루에서 가장 잘 보이는 벽면에 걸렸던 그 시계는 매 시간마다 종을 쳐 댔다. 새벽 서너 시에도 어김없이 울렸다. 초침 돌아가는 것도 소음으로 여기는 요즘에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풍경이다.

옛날 시계들은 '밥'을 먹었다. 태엽을 감아줘야 시침과 분침이 돌았다. 밥 먹은 시계는 우리의 밥때를 정확히 알려줬다. 밥 값했던 시계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식구 중 누군가 밥을 너무 많이 줘 시계는 탈이 났다.

모친은 몇 차례 동인천 시계포에 갖고 가서 태엽을 고쳤지만 며칠 지나면 시계는 우리의 밥때를 엉뚱하게 알려주곤 했다. 결국 벽에서 떼어졌고 다락방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큰 바늘을 '12'에 맞추면 종을 여전히 울렸던 그 시계는 다락방 안에서 나의 장난감이 되었다.

매년 한 차례 인천시립박물관에서는 '유물 기증식'을 한다. 며칠 전 지난해 323점의 유물을 기증해 주신 24명(기관 1곳 포함)의 시민을 모시고 식을 진행했다. 오랜 시간 한 개인의 손끝에 닿았던 물건이 박물관의 유물이 되어 인천 역사의 한 소재가 되는 것을 기념하고 감사드리는 시간이다. 이태 전 선친의 괘종시계를 내 집무실 벽에 걸어두었다. 이 시계는 곧 박물관의 기증품이 될 것이다. 종종 바늘을 돌려가며 반복적 타종 놀이를 한다. 그 종소리는 적당히 어둑했던 어린 시절의 그 다락방으로 나를 데려다준다.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