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옥 인천시 시설물유지관리협회 상임고문
최근 '갑질'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갑과 질이 합쳐진 이 단어에서 갑은 을과 계약을 하면서 재화나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제공받는 측이다. 접미사인 질은 선생질, 고자질, 싸움질 등과 같이 얕잡아보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나쁜 행동임을 나타내는 을측의 감정이 은연 중 녹아 있는 단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거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 갑질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독재자의 갑질이 그것이고 있는 자와 없는 자, 귀족과 평민 사이에서도 언제나 갑질이 존재해 왔다.

개인의 능력과 인격을 최대한 보장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주종 관계에서 벗어나 인격적으로 대등함을 상징하는 계약제도 또한 갑을 관계는 여전히 비공식적 권력 관계로 상존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 항공사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 자신의 승용차 운전기사들에게 상습적으로 폭언·폭행을 한 제약회사 회장, 가맹점을 탈퇴한 점주들의 가게 앞에 매장을 차려 영업을 방해하거나 각종 광고비 등을 가맹점주들에게 떠맡긴 악덕 프랜차이즈 회장 등의 갑질 행태는 21세기 대명천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경제 검찰'이라 불리는 모 위원회의 노조가 지난 9월 흥미 있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5급 이하 400여 명의 공무원이 과장급 이상 80여 명에 대한 평가 과정에서 제기한 대표적 갑질 사례를 보면, 이 위원회의 모 국장은 자주 젊은 여성 사무관들과 술자리를 갖고 있는데 어느 한 여직원에게 술자리 멤버를 구성할 것을 지시하면 이 여직원은 다른 동료들에게 사정하여 술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들 하급 직원이 지적하는 상사의 갑질은 이 외에도 막말, 호통, 짜증, 비아냥 등으로 나타났다. 시장의 갑질을 근절해야 할 이 위원회는 급기야 위원장의 사과로까지 이어졌다.

갑질 사례 또한 천태만상이다. 공무원이 징계를 받았을 때 그 억울함을 구제하는 소청심사위원회가 소청심사결정사례집에서 밝힌 직위를 이용한 갑질 내용을 보면 단골인 뇌물수수, 공금의 개인 유용, 직무와 관련 있는 회사 직원에게 개집 만들어 달라고 하기, 상관 자녀의 과외수업, 원치 않은 술자리 참석에다 술값 지불까지 등이다. 건설업계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갑의 횡포에 대응할 수 없는 을의 입장을 다소 과장해 살펴보면 을은 자신의 생사여탈권까지 갑에게 맡기고 있는 형국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법 조항을 자의적으로 적용해 인천지역 시설물유지관리업체를 배제한 최근의 사건 역시 대표적 관공서의 갑질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나중에 시정 조치가 됐으나 아직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어떤 또 다른 빌미가 시설물유지관리업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하도급 거래구조 개선을 통한 공정화 기반 마련 등 다각적 대책에 나선 것은 비롯 늦은 감은 있으나 매우 고무적인 조처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런 갑질의 행태가 '문화'로까지 뿌리깊게 존재하고 있는 원인을 여러 가지로 진단하고 있다. 관공서 중심과 서열 우선의 사회, 계급 중시의 관습, 심지어 연령을 따지는 유교문화까지도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인격숭상의 가치를 고양하는 사회적 합의가 미흡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