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 편집국장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사업을 돌연 중단했다. 지방자치단체끼리 유치전을 치르느라 지나친 소모전을 펼치는데 따른 조치다. 공모에 떨어진 지자체의 극심한 반발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다음달 발표를 잔뜩 기대하고 있던 전국의 후보지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비 450억원이 드는 한국문학관은 오는 2020년 개관 예정이다. 문학 사료의 연구·보존·전시·교육 등을 펼칠 한국문학의 총본산이나 마찬가지다. 문체부는 지난달 후보지 공모를 냈고, 인천을 비롯해 서울·부산·대구·광주 등 전국 24곳이 유치신청서를 냈다. 후보지별로 당위성을 알리는 홍보물을 곳곳에 내걸었고, 유치위원회가 꾸려져 활동에 들어갔다. 과열경쟁을 우려한 문체부가 "공정한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자체는 불이익을 주겠다"며 자제를 당부했지만 열기는 식지 않았다.

유치경쟁에 뛰어든 인천의 상황을 보자. 인천은 작년 송도에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을 유치했다. 전국 9개 지자체간 경쟁을 뚫고 얻어낸 성과다. 인천은 훈맹정음 창시자 박두성 선생의 고향이다. 여기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2015 세계책의수도였다. 문학관 후보지로 충분한 당위성이 있다. 인천시도 내심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문학관 사업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허탈감만 더 커졌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병법가 손무(孫武)의 전쟁철학은 속전속결이다. 전쟁이 길어지면 병사들이 지쳐 사기가 떨어지고, 나라의 재정이 바닥나게 마련이다. 장기전은 무조건 피하라는 얘기다. 전쟁을 치르기 전에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고, 일단 시작했으면 되도록 빨리 끝내는게 상책이다. 문체부는 어설프게 문학관 공모사업을 벌이다 갈등과 혼란이 우려되자, 장기전으로 끌고가고 있다. 지자체끼리 쓸데 없는 경쟁만 부추긴 실패한 전쟁이나 다름 없다.

정부는 얼마전 동남권신공항 백지화로 심각한 국론분열을 겪었다. 문학관 중단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모사업이 매번 이런식으로 삐걱거리면 정부의 공신력은 땅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곧 발표를 앞두고 있는 국립철도박물관도 현재 전국 11개 후보지끼리 치열하게 경합중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반발·불복 등 후유증이 예상된다. 정부 논리대로라면 철도박물관 후보지 선정도 보류해야 한다. 그래야 아예 후보지 조차 신청하지 않은 '한국철도 역사의 효시' 인천에게도 슬그머니 기회가 올 것 아닌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