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룡칼럼 - 논설고문
'연수구 초등학생 유괴사건'으로 입은 충격이 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하필이면 인천인가 하는 자괴심마저 들어 더욱 섬뜩하고 언짢은 기분이다.
허기야 이게 어찌 어느 특정지역의 아픔에 그칠 사안인가. 문제는 일상의 의식관행의 혼돈과 미흡한 치안대책이 맞물린 불신증후의 소산이다.
범인에 대한 가누기 어려운 분노와 아울러서 남을 믿고 착하게 살면 불이익을 당하기 십상이라는 불신풍조에 허탈해진다. 그렇지 않은가. 일단 남을 의심해 보는 것이 삶의 으뜸요령이라 한다면 이게 어디 바로 박힌 가치관인가 하는 반문이 나서기 때문이다.
피해 어린이 박 모 군의 부모는 초·고교 교사임을 감안할 때 평소 학교교육은 물론 자녀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남을 돕는 미더운 사람이 되라고 일깨웠을 것이 헤아리고 남는다. 아니나 다를까 사건당일 길을 묻는 범인에게 순순히 응한 것이 불행의 실마리라니 왜 친절을 베푼 것이 잘못인지 착한 어린이는 숨 거두는 순간까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자식에 이르기를 "너 아니면 모두 도둑으로 여겨라"는 훈계가 없지 않는 것은 "눈감으면 코 베어 먹을 세상"이라는 속담을 떠올린 노파심이라지만 이게 어디 정상인가 싶다.
자고로 세상사 의심이 지나치면 없는 귀신까지 보인다(疑心生暗鬼-列子-)고 했다. 사사건건 의혹의 눈으로 보려 한다면 끝 가는 데는 불신 밖에 없다는 일깨움이다.
한 울타리 안에서 마주친 주민에게 목례했는데 외면하는 바람에 멋쩍었던 경험이 없지 않으리라. 서구사회선 모르는 사람끼리 눈만 마주쳐도 가벼운 미소를 주고받는 것과는 딴 판으로 우리의 경우 오히려 의혹의 눈초리가 돌아오니 모두가 도둑 같이 보인다는 투다.
물론 거짓을 믿어서는 아니되는 것처럼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해야 함이 옳다. 하지만 티 없이 맑은 여덟 살 박이 어린이가 거짓을 간파 못할 것이라는 흉악범의 수법이 통용되는 것이 현실적 고민이라 한다면 이에 따른 경각심 제고는 빠를수록 좋다. 그러한 차원에서 공연한 의심의 소지를 거두게 할 안녕과 신뢰사회의 저변확대에 관계당국의 예방교육과 치안대책이 더불어 강화되어야 함은 불문가지다.
보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인천지역발생 유괴사건은 5건에 이르며 그 중 4건이 연수경찰서 관내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있으니 이를테면 전과(前科)지역이나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역시 부실한 초동수사가 사건을 확대한데 더하여 애써 설치했다던 CCTV마저 전시효과에 머물러 작동치 않아 결정적 단서를 놓치는 우를 범했다니…. 해당 CCTV의 불실한 관리의무를 놓고 경찰과 경제청이 때늦은 책임전가에 허둥대는 꼴은 명색이 동북아 허브를 지향하는 송도국제도시의 자화상을 엿보는 것 같아 낯이 뜨겁다.
미국의 경우 유괴사건 발생즉시 전광판 인터넷 등을 통해 납치 어린이의 신상을 알리는 이른바 '엠버 경고 시스템'의 가동으로 결정적 단서를 잡는데 우리는 그나마도 사장한대서야….
남을 가해하려는 위험인물은 파국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깨닫게 해야 한다. 하물며 길 안내에 나선 어린이를 묶어 유수지에 던져 숨지게 한 천인공노할 유괴범은 벗어날 구멍이 없다.
이와 관련한 네티즌의 설문에 답한 100여명의 의견은 "사형에 처해 마땅하다" 했단다. 현행법상의 유괴범에 대한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은 상응한 선고가 아니라는 여론이다. 한편 교도소에 복역 중 범죄수단을 익혀 나왔던 고전적수법과는 달리 지금은 넘치는 영상매체가 모방범죄를 충동질하고 있어 이에 대한 정화작업 또한 유예할 수 없는 당면과제다.
자나 깨나 남을 의심하고 나야 일에 손이 잡히는 부조리사회라 그런가?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는 무수한 '그놈의 목소리'가 맴돌고 엿보는 것 같아 어린 자녀 돌보기가 불안하다./김경룡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