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일반 백성들은 피마자나 상어 기름을 넣어 쓰던 재래식 등잔 대신 석유 등잔을 들여놓고 궁궐이나 귀족들은 그보다 호사스런 서양식 램프를 사용하던 시절,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백열등은 문명개화의 충격적인 상징이었다.
그 전기와 백열등이 인천에 등장한 것은 1906년 4월이었다.
인천 거주 외국인 39명이 공동 출자한 인천전기회사가 송월동에서 발전을 시작한 것인데, 발전기 두 대로 시작한 이 회사는 1910년 말 6백90가구에 3천8백60 등을 공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쌀 한 되에 18전 하던 때, 종야등(終夜燈) 16촉 한 등의 1개월 사용료가 3원이나 하는 고가여서 일반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백열등이 일반화된 것은 인천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1만7천여 가구가 4만3천여 등을 사용하던 1933년 이후였다.
백열등은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민의 빛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형광등이 출현하면서 환경의 적으로 지목을 받아 왔고, 마침내는 지구상에서 퇴출시키자는 캠페인이 호주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다. 열로 낭비되는 에너지가 많고, 전력 소비도 형광등의 5배나 많다는 게 대죄(大罪)란다.
설마 그러랴 싶었는데, 호주 환경청 장관의 "전 세계에서 백열전구 사용으로 인해 배출되는 온실 가스양은 자동차 배기 가스양의 70% 수준"이라고 한 보고에는 이의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백열등 아래서 펼쳐갔던 유년 시절의 추억들이 오늘 웬지 새삼스럽다./조우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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