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홀 - 조우성 <객원논설위원>
지난 설 연휴에 프랑스의 감독 '클로드 랑즈망'이 만든 영화 '쇼아(SHOAH)'를 보았다. 뉴욕 타임즈가 1985년 이 영화를 '상상도 못할 위업'이라고 극찬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고 그 내용을 궁금해 하던 차에 우연히DVD를 구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상영됐던 러시아 영화 '전쟁과 평화'가 하도 길어서 관객들이 극장에서 점심을 먹어가며 봤다는 얘기를 언젠가 듣긴 했지만 이 영화도 큰맘 먹고 밥 먹어가며 볼 수밖에 없는 9시간짜리 대작이었다. 쟝 폴 싸르트르가 창간한 잡지 '현대'의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던 레지스탕스 출신의 지성파 감독 '클로드 랑즈망'은 1973년 이후 사전 조사차 14개국을 방문했었고 150여 시간에 걸친 촬영과 5년여 동안의 편집을 마치고 1983년에야 비로소 히브리어로 '절멸(絶滅)'이라는 제목을 지닌 이 영화를 공개했다.
영화에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유태인과 독일인 가해자들, 그리고 제3자인 방관자들의 인터뷰가 이어지고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여러 유태인 수용소와 사람을 집단으로 태워 죽였던 으스스한 망령의 숲을 안내하면서 인종 말살의 진상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있었다.
동서의 일부 지식인들이 나치를 턱없이 찬양하거나 유태인을 모욕했던 일들이 얼마나 유치한 역사에 대한 모독이었던가를 이 영화는 웅변하고 있었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왜 일제 35년을 증언해 줄 '클로드 랑즈망'이 없었던가를 자문하게 했다. 또한 최근 미 의회 청문회 사상 처음으로 열린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맺힌 증언과 마치 그 증언을 희석시키기라도 하겠다는 듯 '요코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되뇌는 일본계 미국 노파의 장광설을 들으면서 도대체 지난 4년간 일부 정치인들이 집착했던 '과거사 규명'은 무엇이었던가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조우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