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강석봉 인천시의원
일본을 여행 중인 어느 대학교수가 신문에 기고한 글을 읽다가 무릎을 친 일이 있다.
50의 나이는 넘겼음직한 그 교수는 자신이 학창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군대에 끌려간 사실을 놓고 '운동권 주변을 맴돌던 얼치기 투사' 라고 표현을 했던 것이다. 또한 그 시절을 '얼치기 투사들을 양산시킨 독재정권'이라고도 표현을 했다.
그 기고문의 내용이야 운동권 이야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지마는, '얼치기 투사'라는 한마디의 단어가 주는 그 삼삼한 맛이 오랫동안 내 목에 걸려있던 가시를 빼내는 것만큼이나 기가 막혔던 것이었다.
그 시절에 웬만한 대학생치고 운동권 아니었던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마는, 나 자신도 여러차례 붙잡혀 무기정학을 당하고 수배령을 당해 도망다니던 시절이 있었으니 분명 운동권 학생이었음은 분명할 터인데, 그 '운동권'이라는 단어에 나를 등식 기호로 연결을 하다보니 오히려 수십년을 정체성의 혼란에서 허덕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때론 어깨의 별이라도 되는 것처럼 술자리에서 호기도 부리고 때론 세상일에 휩쓸리면서 나의 선명했던(?) 의식의 변질에 괴로워도 하고 때론 급진세력들의 과도한 행동들을 마치 그 전부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화려한 논리로 대변하기도 했으니 아마도 내 의식의 어느 한 귀퉁이에 시대적 혹은 사회적 차별화에 대한 욕구가 있었음이 분명할 것이다. '얼치기 투사' 이었음을 모르고….
토목 공학과를 졸업하고 큰 그룹회사에 취직을 하여 여러 현장을 다니고 또 직접 건설회사를 차려서 사업의 길을 걷기까지 무려 삼십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다 보니 툭하면 내 입에서 튀어 나오는 말이 "노가다 짬밥이 30년"이라면서 마치 그 방면의 도사라도 된 것처럼 누구를 만나든지 가르치려 드는 버릇이 있다. 써 먹은 말 또 써 먹고 말을 들어주는 상대가 조금이라도 감탄스러운 표정을 지어주면 그 날 술값은 전혀 아깝지 않은데다가 안 간다는 노래방까지 꼭 끌고 가야 직성이 풀리니 아마 난 내가 배운 건설 분야에 대해서는 상당한 자신감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왔음이 분명하다.
결론적으로는 사업을 망해놓고서도 말이다. '얼치기 기술자' 이었음이니….
시의원에 재선이 되고 서당개 삼년이면 어쩐다더니 이제 공무원들도 좀 알만해 지니까,
인천의 미래를 놓고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시의원에게 주어진 역할이고 보니 몇 마디 안 할 수는 없겠는데 감이고 대추고 이것들이 어디 한두푼 짜리인가. 수십, 수백, 수천억에 이르다 보니 얼치기 시의원으로서 고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나마 열심히 공부하는 시의원들이 많아서 대충 묻어가는 구석도 있음이 고맙기만 하다.
새해가 밝았다. 황금돼지의 해라고 한다. 길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 핵이 터질지 말지, 군사 작전권을 누가 가져갈지, 부동산값이 잡힐지 말지, 서민 경제가 올라갈지 내려갈지, 산적한 이 나라 앞길이야 내가 알고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겠지만 올해 있을 대통령 선거만큼은 '얼치기 대통령'이 아닌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나오길 충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어설픈 학생운동의 추억! 어설픈 기술의 토목인생! 그리고 어설픈 시의원의 지방정치에 '얼치기'라고 하는 후회스런 표현을 붙이면서 대통령을 생각한다./강석봉 인천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