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1930년대 인천의 저자거리는 지금의 신포시장에서부터 싸리재 마루턱까지였다고 전한다. 이 거리에는 우편소, 금용조합, 스탠다드 석유대리점 등과 부민(府民)들의 사랑을 받았던 비단점 주봉기 상점, 잡화점 태풍상회, 문방구 희문당(喜文堂)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 저자거리 아래쪽인 밤나무골 초입에 1954년 12월 사업가 장범진 씨가 인천 최초의 백화점인 '항도백화점'을 세웠다. 당시로서는 드문 3층짜리 건물과 진기한 양품류 모두가 '항도(港都)'의 화젯거리였지만, 개점 1년여 만에 구매력 부진 등으로 문을 닫았다.
물론 광복 전 일인계 백화점으로 유명했던 미쓰코시(三越), 초지야(丁子屋), 그리고 박흥식 씨의 화신(和信)백화점의 인천 분점과 60년대의 양품점 '뉴욕'과 '신화' 등이 없던 것은 아니나 인천에 근대적 의미의 백화점 한 곳이 없었던 게 저간의 사정이었다.
'인천경제사(김홍전 지음)'에 따르면, '항도백화점' 이후 '백화점'으로 출범한 유통업체는 1978년에 문을 연 부평백화점이었고 그 뒤를 대도, 삼익, 로얄 등이 따랐으나 직영률을 50%로 강화한 82년도 개정 시장법에 따라 모두 허가가 취소되는 비운을 맞았다.
본격적인 현대식 백화점이 선보인 것은 1985년 '희망백화점'부터였다. '희망'은 한동안 승승장구 하였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고전을 면치 못했고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재벌 계열 백화점과 국내외 대형 할인점들이 군웅이 할거하듯 인천 시장을 점령해 목하 성업 중이다.
구랍에 구월동 뉴코아 인천점에서 큰불이 났다고 한다. 본보는 지하 주차장을 창고 용도로 이용하면서 불러온 '예고된 사고'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독가스로 쇼핑객과 직원 등 6명이 치료를 받는 등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다. 이래저래 그들의 사회적 책무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게 된 대형 유통업체이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