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객원논설위원>
말은 술과 같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정신을 잃듯, 말도 많이 하다보면 제가 제 말의 맛과 향기에 취한다. 일종의 도취적 증세가 나타난다. 제가 내뱉는 말을 상대가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이며, 그 파장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문제도 아니다.
특히 스스로 말을 잘 한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들일수록 실수(失手)가 많다. 그래서 말에 깨어난 후에는 그를 수습하느라 진땀 빼기가 일쑤지만, 한번 내뱉은 말은 '기록'되는 것이지, 취소한다고 해서 지우개로 지우듯 사라지는 게 아니다.
언어심리학자들은 말에 관한한 실수(失手)는 없다고 한다. 그 '실수'에는 이유가 있고, 그를 분석하면 발화자(發話者)의 심층심리 상황을 여실하게 알아낼 수 있다는 게 프로이트의 '말실수'에 대한 인식이자, 해석이다. 한 장관이 있었다. 그는 총리가 꿈이었다. 그러데 자기가 데리고 있던 차관이 총리로 승진했다. 자기로서는 말도 안 되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체면상 차관의 총리 승진 축하연의 호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장관은 신임 총리의 장도를 축하한다며 점잖게 건배를 제창했다. 그러나 '축배!'라고 해야 할 것을 자신도 모르게 '구역질!'하고 외쳤다. 독일 말에 '축배'와 '구역질'이란 단어의 발음이 유사하다고는 하지만 장관은 사실 모든 게 '구역질'났던 것이다.
이는 '말실수'의 전형적인 예일 수 있지만 '의도된 실수'는 현실적인 이런저런 계산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그 해석조차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의도했던, 아니던 말은 가려서 해야 한다. 조선시대 왕들이 위 아래를 가려, 스스로는 '여(余)', 고위 관료들에게는 '경(卿)'이라 하며 스스로를 낮추고 신하를 존중해 주었던 법도를 새삼 생각케 해 주는 요즈음이다./조우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