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대통령 탄핵사건을 다뤘던 헌법재판소에는 요즈음 국민의 관심을 끄는 사건들이 연속되고 있다. 수도이전 반대소송에 이어 이번에는 사학법 위헌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헌법재판소장도 공석인데 큰 사건이라고 재판을 열지 않을 수 없는 딱한 처지이긴 하나 권한대행이 있으니 재판을 열지 않을 이유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청와대의 실수로 멀쩡한 헌재소장 후보자가 낙마한 모습은 헌재를 재판 못지않게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사학법과 같은 국민의 관심사인 큰 사건은 반드시 전원재판부에서 다루는 것인데 재판장을 맡아야 할 소장이 부재중이라 결국 한 사람 모자라는 전원재판부가 되었다.
12월 14일 세밑에 열린 공개변론 재판은 몰려드는 방청객을 제한하여 미리 방청권을 발부했다. 이 소송은 이해 관계자만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사학법인 연합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조용기와 우암학원이 청구인으로 앞섰지만 실제로는 전국의 모든 사학이 이에 동조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종교단체의 입김은 더욱 거세어 이날 재판에 앞서 헌법재판소 정문에서는 이들 사학수호 전국연합회의 임원들이 총출동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민의 관심사를 재판부에 호소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이미 70이 넘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삭발을 하고 나온 두 단체의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인데 그 비장한 마음이 읽혀졌다.
이날 공개변론의 가장 큰 쟁점은 개방형 이사제, 사립학교에 대한 과도한 국가의 관리 감독, 임시이사의 선임요건을 완화하고 임기제한을 철폐한 법 조항, 학교법인 설립자와 이사장의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은 학교장 임명을 제한한다는 조항 등이었다. 이러한 법 조항은 지난번 사학법을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단독으로 날치기 통과시킬 때 삽입한 것인데 이것들이 모두 위헌요소가 있다는 주장이었으며 이에 대항하여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사학운영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태도였다.
물론 양쪽의 주장은 겉으로 볼 때 팽팽하게 맞선 느낌이었지만 "현행 사학법은 사립학교의 국 공립화를 꾀하는 반개혁적 법안이다"라는 사립학교 측의 주장에 대해 교육부 측은 "사학비리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을 전개했으나 곤혹스러운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사학비리가 발생한 학교는 전체사학의 몇 프로에 지나지 않는 극소수인데 이를 빌미로 전체를 장악하려고 하는 것은 사학 설립자의 건학이념과 재산권을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라는 위헌요소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 중에서도 사립학교의 재산과 운영권을 공적가치로만 판단하려는 태도는 재단법인이 국가의 간섭없이 운영되어야 하는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며 외부인사가 건학이념과 관계없이 개방형 이사로 들어왔을 때 일어날 혼란은 헌법에 보장된 행동자유권과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 푼의 보상도 없이 사학을 빼앗겼을 때 사학을 설립한 본질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아무런 대책을 찾을 수 없었다. 피신청인 측의 변호사들은 오직 사립학교 재정에 대한 국가의 부담이 크다는 점만을 강조하여 최소한의 제한은 부득이하다는 이론을 전개하고 있으나 학생 선발권을 국가가 관장하고 있는 한 재정지원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선발권을 학교에 돌려주면 얘기는 다르다.
그들은 개방형 이사제를 옹호하여 "국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학교법인에 대한 제도적인 견제장치를 만들어 헌법이 부여하는 학교 형성권을 보장하려는 것"이라고 교언영색하고 있으나 그것이야말로 사학의 자주권을 빼앗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날 공개변론은 앞으로 한 차례쯤 더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헌재의 관행으로 미뤄볼 때 내년도 3, 4월경 판결이 날 가능성이 크다. 사학에 대한 지나친 간섭은 자칫 건학이념을 짓밟고 엉뚱한 사람들이 학교를 지배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것이 위헌이냐 아니냐 하는 판단은 전적으로 헌재의 권한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2월에 있었던 상지대학교 임시이사들이 정이사를 선출한 행위에 대한 서울고법의 명확한 판결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서울고법은 임시이사의 권한을 통상적인 학사업무의 처리로 못 박으며 학교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정이사 선출과 같은 중대한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다고 판시하며 그들이 선출한 이사는 불법무효라고 선고한 것이다.
이는 개방형 이사제의 부당성과 위헌성을 함께 부각시킨다. 비록 대법원의 확정판결은 아니지만 모든 법리 해석상 설립자의 건학이념을 살려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법적 논쟁은 헌재로 하여금 사학의 자율권을 인정하게 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전대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