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칼럼 - 이한수 한국환경생태연구소장/동아대학교 겸임교수
겨울 철새들이 도래하는 시기에 맞춰 철새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조류인풀루엔자가 전북 익산에서 발생하여 애꿎은 주변의 닭들까지 살처분됐다. 농림부에서는 조류인풀루엔자의 전염원으로 철새를 의심하고 있다.
겨울철새들이 날아드는 계절에는 전국의 유명한 철새도래지에서 조류탐조에 관련된 행사가 많이 열린다. 충남 서산과 전북 군산에선 철새축제를 개최해 자연환경의 우수성과 청정지역임을 홍보하기에 바쁘다. 그래서 겨울철새와 조류인풀루엔자와의 관계를 부인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철새에 대한 관심이 많은것 같다. 선거철이 되려면 아직 일년이 넘게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정든 집을 떠나려는 성급한 철새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우리나라에서 겨울철 탐조여행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새가 가창오리 무리이다. 매년 겨울이 되면 충남 천수만, 금강하구, 그리고 해남의 고천암호에는 60만마리가 넘는 가창오리가 대군을 지어 도래하고 있다. 가창오리를 관찰할 때는 해질 무렵이 가장 좋다. 낮에는 호수에서 휴식을 취하던 새들이 어두워지면 먹이를 찾아 한꺼번에 주변 논으로 날아가는 군무가 장관이다.
가창오리의 번식지는 북극권에 있는 러시아 시베리아의 광활한 습지이다. 필자는 가창오리의 번식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2002년 여름에 시베리아 레나강 유역의 습지를 한달간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창오리 번식지로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하다. 우선 인천공항에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으로 날아간 다음 일주일에 한두번 운항하는 비행기를 타면 북극권에 있는 사하공화국 야쿠츠크에 도착한다. 이 야쿠츠크에서 경비행기를 임대해서 레나강 중류의 원주민 마을로 몇시간 날아간 후에 보트를 타고 몇일동안 찾아야만 기다리던 가창오리 번식지를 만날 수 있다.
초현대 과학문명의 기기를 이용하는 우리도 가창오리의 번식지를 찾아간다는 것은 이렇듯 매우 어렵다. 그런데 새들은 자기가 가야 할 곳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간다. 번식을 마친 가창오리는 나침판도 없이 약 3천km를 날아서 한국의 월동지로 정확히 날아온다.
경기도 일대의 갯벌에 도래하는 알락꼬리마도요와 큰뒷부리도요는 더 먼 거리를 이동한다. 시베리아에서 번식을 마친 도요새는 한국 서해안 갯벌을 중간 기착지로 하여 멀리는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날아간다. 직선거리로만 따져도 8천km가 넘는 거리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철새들은 번식기가 되면 매우 정확하게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 제비를 연구해 보면 같은 새가 매년 똑같은 집에 날아와 번식하는 것도 확인된다.
철새들의 귀소본능은 새들의 다리에 가락지를 달아주고 관찰하면서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기술이 발달해서 철새에 전파발신기를 부착해 인공위성으로 추적하기도 한다. 올 여름 미국 국립지리연구소팀은 몽골 북부에서 천연기념물인 큰고니에 전파발신기를 부착해서 이동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전파발신기를 부착한 큰고니 두 마리는 현재 낙동강 하구와 경남 사천의 습지에서 도착한 것이 확인됐다. 이들도 내년 봄이 되면 자신이 태어난 북쪽으로 정확히 돌아갈 것이다.
먼 바다 무인도에서 집단 번식하는 바다새들은 훨씬 정교한 집찾기 능력을 갖고 있다. 태평양의 무인도에는 날개를 핀 길이가 2m에 달하는 알바트로스가 번식하고 있다. 섬에서 태어난 어린새는 자라서 바다로 나간 후에는 완전히 성장해서 번식을 할 때까지는 대양을 누비며 살아간다. 몇년이 지나 번식을 시작할 나이가 되면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자신이 태어난 섬을 찾아 돌아온다.
남북 위도상의 위치는 태양이나 별자리를 보고 쉽게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바다에서 경도상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게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도 불과 수백년 전에 이룩한 업적이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새들은 수천만년동안 도구의 도움 없이 망망대해에 떠있는 자신의 고향을 찾아가고 있다. 해마다 선거 때가 되면 수많은 인간 철새가 나타난다. 그렇지만 철새는 자신이 가야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정확히 안다. 그리고 집을 떠난 후에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규칙적인 행동을 한다.
목적도 없이, 그리고 돌아올 기약도 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당을 기웃거리는 정치가에게 철새라는 명칭은 주는 것은 진짜 철새를 모욕하는 것이다. 오히려 폭풍우에 길을 잃고 정처없이 떠돌면서, 결국에는 도태되는 운명을 맞게 되는 미조(迷鳥, 길 잃은 새)가 더 적당한 이름이 아닐까./이한수 한국환경생태연구소장/동아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