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부총장
매년 가을 취업시즌이 되면 신입사원 공채는 물론 중견사원, 간부들의 이력서가 회사 인사담당자들의 책상에 쌓이게 된다. 최근 내가 만난 인사담당자들이 실토하는 이야기를 듣건데, 이력서는 화려한데 실제로 그 분야에 일을 시켜보면 사실과는 다르다고 한다. 즉,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근무했다고 해서 반드시 실력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얼마만큼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일의 핵심을 파악하여 전심전력했느냐가 관건이 된다. 적어도 자기가 하는 일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자기분야에 정통하여야 하겠다.
조선 성종 때 교서관 정자의 벼슬을 하고 있는 자(字)는 정보(正甫), 호는 백결재(白潔齋)인 구종직(丘從直)이란 선비가 있었다. 하루는 근무 중에 몰래 대궐에 들어가 좋은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 때 밤늦게 오던 임금님의 행차와 마주치게 되었다. 황급히 땅에 엎드린 구종직을 본 임금은 그를 일으켜 세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종직은 오경 중에서 '춘추'를 잘 외웠는데 이날 임금 앞에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다. 그의 숨겨진 재능을 알게 된 임금은 다음날 어명을 내려 그를 대폭 승진시켰다. 그러자 주위의 신하들이 모두 반대했다.
임금은 반대한 신하들과 구종직을 어전으로 불렀다. 그리고 '춘추'를 가져오게 했다. 임금이 한 권을 뽑아 신하들에게 암송토록 했다. 아무도 외우는 사람이 없었다. 임금이 구종직을 지목하자 한 권을 모두 외우고, 아무 구절이나 뽑아 물어도 전혀 막힘이 없었다. 신하들은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했다. 성종은 '춘추'를 한 구절도 못 외우는 신하들에게 "경들도 글과 관련이 있는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어찌하여 한 가지 경전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신진에게 벼슬을 마음대로 승격시켰다고 반대만 하오. 무릇 사람은 실력이 가장 우선하는 것이오. 그런 줄 알고 경들도 글공부를 좀 하도록 하시오."라고 꾸중을 하고는 구종직에게 어명대로 벼슬을 주었다.
이처럼 사람은 자기 분야에 누구보다도 정통해야 한다.
자기 일에 정통한다는 것은 일을 하는 사람의 태도에 달려있다. 사람은 두 가지 유형으로 일을 한다. 한 사람은 어떤 일에 아주 오랫동안 경험해도 깊고 본질적으로 파고들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노하우를 갖추지 못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일을 금방 시작해도 그 일에 대하여 핵심적인 부분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금방 노하우가 쌓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자리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근무했느냐 하는 근무년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일에 정통하며 그 일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경험년수가 얼마인가를 중요한 요소로 보는 것이다.
이 둘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근무년수가 10년이나 되어도 그 일에 몰두하지 않아 그 일에 대한 경험년수는 1~2년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근무년수가 1~2년 밖에 되지 못했는데도 맡은 일에 대해 문제의식, 초점의식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일해 왔다면 그 경험 년수는 10년 이상 되는 사람과 견줄 수 있다.
이러한 경험 년수와 근무 년수의 근본적인 차이는 일하는 태도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안일하게 매년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 10년이 아니라 20년이 지나도 동일한 경험밖에 하지 못하므로 노하우가 쌓일 리 없다.
이런 사람은 오히려 매너리즘에 빠져 새로운 일도 맡기가 힘들다. 그 반대의 사람은 맡은 일도 질 높게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도 그 일 못지않게 잘 해내게 된다. 잘하는 사람을 발탁되지 못하게 하거나 때로는 재능도 없으면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일의 핵심에 있어야지 주변에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일에 정통해야 한다.
자기 일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가지려면 피나는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비록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관련업무까지 파헤쳐서 정통하도록 하자. 따라서 T자형 인간을 추구하기를 권한다. T자형 인간이란, 횡적으로는 넓게 많은 것을 알고 종적으로는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깊게 아는 사람을 뜻하는데, 현 우리 사회에 꼭 필요로 하는 인재 상으로 볼 수 있다. 전문성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은 아니라, 한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자세와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나 자신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또한 하고자 하는 일에 식견을 가지고 정통하고 있는지 스스로 반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