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 시립인천전문대학 무역과 교수
최근 우리 사회에 우리 식 또는 우리 중심의 사고와 행태가 널리 퍼지고 있다. 주몽이니 대조영이니 연개소문이니 하는 고대 사회의 영웅들이 유행처럼 텔레비전의 드라마를 장식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현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 사회가 경제·사회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자기중심적 세계관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게다가 우리 스스로를 엽전이니 하면서 비하한다거나 국산품의 품질이 외국제품에 비하여 조악하다보니 한국적인 것을 삼류와 동일시하던 지난 시대에 비한다면 작금의 현상은 자부심의 산물로서 누구나 기뻐해 마지않을 일이다.
하지만 우리 중심의 사고는 자칫 일종의 자국편견(Home Bias)으로 전화할 위험성을 내포 한다. 우리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지나쳐 절대선으로 미화한다던지, 주변 여건이나 국제적인 흐름을 외면하고 우리 식의 장점만을 부각 시킨다던지, 주관적 입장에 치우쳐 현실을 직시하려는 시도를 사대주의 내지 패배주의적 사고로 치부 한다면, 그것은 객관의 영역을 넘어 우리만의 편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국편견은 스스로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킴으로써 국민의 안전과 번영을 저해할 우려가 크기에 건전한 사회라면 경계함이 마땅하다.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유라시아대륙의 끝자락에 자리한 한반도를 삶의 터전으로 하여 살아왔다. 한반도는 반도다. 반도는 순우리말로 옮기면 반은 섬이라는 의미의 '반섬'이다. 따라서 한반도는 육지로서의 특성과 함께 섬으로서의 특성도 갖는다. 지리경제 내지 지리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섬으로서의 반도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바다를 통하여 세계 각 지역에 고루 연결될 수 있기에 개방적이며, 대륙에 비하여 특정한 인접 지역의 영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기에 자율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율성은 뒤집어 보면 외부세계로부터 섬을 일정 정도 격리시키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고립성 내지 폐쇄성을 이면으로 하며, 고립성과 폐쇄성은 종종 낙후성의 요인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우리의 지리적 특성이 그만큼 자국편견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한반도가 남북한으로 갈린 이래 오랫동안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은 육지라기보다는 사실상 섬이나 다름 없었다. 남쪽은 대륙으로의 진출이 북한에 의하여 사실상 차단됨으로써 육지와의 연결이 봉쇄되어 왔으며, 북쪽은 같은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표방하는 중국과 소련에 육로로 맞닿아 있어서 외형적으로는 섬이 아니지만 체제 내부의 사정으로 인하여 대륙 나라들과의 교류와 소통이 제한적이었고 더욱이 태평양 건너 외부세계와의 교류는 등한시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쪽은 20세기 후반기의 대부분을 바다를 통하여 선진 시장경제체제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데 힘쓰고 교류를 증진 시킴으로써 개방성을 충분히 살려왔기에 섬이 갖는 고립성 내지 폐쇄성의 한계를 벗어나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남쪽에서도 고립성과 폐쇄성의 그늘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정치권은 정치적 고려에서 국내의 특수성을 세계적인 일반성에 우선하고 사회 각계에서도 국제적인 조류와 인식을 애써 외면하려는 양태들이 나타나면서, 국민의 삶의 질은 떨어지고 안녕은 위협받는 일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어느 정권보다 자주를 표방하는 현 정권이 자국편견의 원인 제공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라는 점은 아이러니컬하다. 세계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우리 중심의 사고와 문제 해결을 강조하다보니 자국편견이 심화되고, 여기에 정권의 무능까지 덧붙여지면서 현안과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지지도가 하락하게 되었으며, 그러다보니 모든 책임이 부메랑이 되어 현 정권에게 되돌아오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편견은 우리가 당면한 객관적인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올바른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데 왜곡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세계적인 조류에 지속적으로 주목하면서 객관성과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때만이 자국편견의 덫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