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도깨비 같은 나라들의 '도깨비 회담'이 다시 열릴 모양이다. 몇 년을 두고 열렸다가 파하고 다시 열리기를 반복하면서 중국 조어대는 회담장소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름대로라면 조어(釣魚)를 해야 하는데 물고기는 커녕 피라미 한마리 낚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있는 6개국의 회담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선은 오직 미국의 태도와 북한의 입만 쳐다보는 형국이니 진전이 있을 턱이 없다. 소위 6자회담의 본질은 북한의 핵을 막자는데 있다. 한반도의 비핵지대 설정은 이미 오래 전에 구상 되었다. 남북한 모두 여기에 동의했다. 유엔 산하 원자력 기구에도 똑같이 가입했다.
그런데 북한이 여기서 탈퇴를 선언하고 갑자기 핵무기 보유를 공언하고 나섰다. 처음에는 많은 나라들이 북한의 허언장어(虛言壯語)로 격하했다. 쌀이 없어 인민들이 굶어죽는다는 나라에서 막대한 돈이 드는 원자탄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핵실험을 하겠다고 사전 경고를 하고 나섰을 때도 "설마, 국제적 지원이 모두 끊길 텐데 무모하게 핵실험을 강행 하겠느냐"라는 분위기였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고 유엔은 긴급 안보리를 소집하여 강력한 제재결의를 했지만 북한은 마이동풍이요 우이독경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북한에 대해서 뚜렷하고 확실한 제재방법은 없어 보인다. 금융 동결을 하고 선박의 검문검색 등으로 수출입품을 통제한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에서 진일보했을 뿐 아닌가.
물론 미국의 막강한 화력은 북한 내의 원자핵 기지를 '정밀폭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곧바로 전쟁이다. 가뜩이나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알카에다를 비롯한 저항세력의 준동에 골치를 썩고 있는 미국이 또다시 전쟁의 미궁에 스스로 빠지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훨씬 우세하다.
입으로는 협박과 공갈을 계속하면서 뒤로는 남모르는 협상의 길을 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북한에 영향력이 큰 중국으로 하여금 특사를 파견하게 하고 일본의 초강경 발언이 연속토록 유도해 왔다. 러시아만이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한 태도를 취했지만 유엔에서는 아무런 군말없이 제재결의에 동참했으니 미국으로서는 모처럼 유력한 국가들의 동조를 획득한 셈이다.
다만 최고 최대의 당사국인 한국은 남북대화와 포용정책을 이어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어정쩡한 태도를 시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북한 제재에 동참하지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으로 대표되는 '성과'가 깽판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북한에 가장 확실한 현금수입원인 이들 사업은 물론 민간사업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에 이어 노무현 정권으로 계속되고 있는 햇볕과 포용의 상징이다.
이것이 망가지면 남북대화는 끝장나는 것으로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심리를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게 북한이다. 남한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북한에 인질이 잡힌 형국으로 정책운용을 하고 있다. 동맹국인 미국의 입장보다 북측의 처지에 더 가까이 하려고 한다.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자세는 참으로 바람직하지만 상대 역시 그렇게 나와야 어울릴 수 있다. 그것은 '핵'이 없어야만 가능하지 않겠는가.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니라 핵에 달려 있다.
이런 참에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 3자가 북경에 모여 전격적으로 6자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은 긴장됐던 분위기를 일신해 준다. 평화를 갈망하는 세계민의 충정이 옳게 반영된 것으로 보고싶다. 그러나 회담의 전제조건은 없었는지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그 동안 6자회담 참여의 전제로 금융동결 해지를 강력히 요청해왔다. 돈을 풀어달라는 요구를 거절해왔던 미국이 유엔결의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북한이 무조건 회담에 응한 것일까. 핵실험 후 예상보다 훨씬 강경한 국제적 압력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던 북한이 중국의 중재에 가만히 수응한 것일 가능성이 많다.
6자회담이 다시 열리면 문제의 본질인 북한 핵의 폐기를 합의하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북한에 제공해야 하는데 그 동안의 진전과정을 감안한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더구나 이미 핵보유국임을 자처하는 북한이 호락호락하게 핵을 포기할 리는 없다. 깔고 뭉개는 방법으로 질질 끌어나갈 공산이 크다. 이번에 재개되는 6자회담은 미국과 북한에게 똑같이 시간적 여유를 갖게 한다.
11월 중간 선거를 치러야 하는 미국과 최대의 압력만은 벗어나야 한다는 북한의 절박감이 이질적인 양자의 '회담합의'로 이해를 같이했지만 '신통찮은 결과'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