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어느 이름난 교수가 “전세계에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 화교 자본이 성공하지 못한 나라, 화교 수가 계속 줄고 있는 나라,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공언한 적이 있다. 그간의 화교 정책도 졸렬했다고 했다.
그의 말은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우리나라도 차이나타운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고, 국가 경제를 위해 화교 자본을 적극 유치해야 하며, 화교 수도 최소한 현상 유지는 해야 떳떳한 문명국이라는 친중(親中) 발언으로 들린다. 차이나타운이 없다는 게 무슨 국가적 결격 사유일 수는 없다. 유럽식 ‘차이나타운’이 없었던 것은 지정적 이유에서였다. 중국과는 천여 년을 넘기는 왕래로 문자를 공유하고, 공맹(孔孟)과 삼국지를 필독서로 읽고, 단오나 추석 같은 세시풍속도 같이 지내온 터였다.
따라서 소위 중화 문화권에 속한 우리에게 중국 문화는 낮 익은 것 이었고, 그를 음미할 수 있는 이색적 문화 창구로서의 ‘차이나타운’ 역시 없었던 것이다. 있었다면 개항 초 대국을 자처하던 그들이 강압적으로 차지했던 거류지 ‘청관(淸館)’이 있었을 뿐이었다.
세월은 약인가 보다. 아직도 영토적 야심을 버리지 못한 채 중국은 총체적 역사 왜곡인 동북공정도 불사하는 판이지만 신세대들은 ‘청관’을 어느 새 ‘차이나타운’이라 일컫고 있고, 양국 교류의 교두보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중국이 줄곧 우리에게 안겨준 가혹한 시련과 역경을 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13억 중국인들과 한 치의 땅덩이도 나눠 쓸 만한 여유가 없는 작은 나라라는 점에서는 신 ‘차이나타운’ 건설 운운은 허장성세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최근 인천시립박물관이 ‘화교, 세계화의 주역’이란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조계 설정 122년 만에 처음으로 화교의 어제와 오늘을 학문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여서 눈길을 모았다.
이 같은 노력들이 모아져 바른 역사의식에 기초한 대중관(對中觀) 확립과 교류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