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
당신 집안에 흉사가 생겨 가족이 파산 직전에 있다고 하자. 그런데 남들이 당신 집에 경사가 난 줄로만 알고 축하하러 온다면 당신은 어떤 심정이겠는가? 싸구려 3류코미디라면 모를까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같은 황당한 상황이 지금 인천대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오는 2009년에 인천대를 '국립대 특수법인'으로 전환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그런데 이 각서가 말하는 '국립대 특수법인'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기존의 '국립대'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정부의 재정 지원이 크게 축소되며 조만간 중지된다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으며, 그 결과 인천대는 특수법인이 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생사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많지 않다.
최근에서야 인천대 교수와 학생들이 크게 반발하는 가운데 신문보도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인천대학이 국립대가 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거나 심지어 축하까지 하는 이들을 자주 접한다. 그럴때마다 인천대 구성원들은 난감한 심정에 빠지게 된다. 물론 정부의 국립대 법인화 정책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수는 없으나 급변하는 환경에 부응하기 위한 대학 개혁의 한 방안 일 수 있다. 그러나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듯이, 이번에 체결된 인천대 법인화 양해각서는 대학과 지역 교육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육부와 인천시가 대학 재정부담을 서로에게 떠넘기기 위한 '더러운 싸움'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타협의 산물이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국립대 특수법인'은 국립대라는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공(公)과 사(私) 중간 형태의 기업을 뜻하며, '특수법인 전환'은 인천대를 국립대가 아니라 사기업으로 바꾸어 민영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교육부와 인천시는 그럴싸하게 합리화하고 있지만, 실은 앞으로 대학 재정 지원에서 손을 떼겠다는 각자 나름의 속셈이 그 뒤에 숨겨져 있는게 바로 이번 양해각서인 것이다. 즉, 이 양해각서로써 교육부는 인천지역에 국립대 만들어 주었다는 온갖 생색은 다 내면서 손도 별로 안대고 코푸는 데 크게 성공한 셈이다.
다른 한편, 인천시는 오로지 대학에 대한 재정 부담과 책임을 회피하려는 관료적 발상 하나로 인천대를 전국의 거의 모든 국공립대학들이 거부하고 인천대 구성원들이 그토록 반대했던 '특수법인 제1호 대학'으로 몰아넣는 성과(?)를 거두었다. 주지하다시피, 인천대는 과거의 비리 사학에서 벗어나 시립화된지 이제 10년을 겨우 넘긴 어린 나이로서, 재정자립을 전제로 한 법인화는 시기상조인 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 양해각서가 진정으로 인천대의 발전을 위한 것이었다면, 법인화 시행 이전에 상당기간 동안 인천대에 대한 정부 지원을 오히려 확대해 자율경영의 확실한 기반을 먼저 마련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의 순서다. 지난 수십년동안 국립대중 가장 많은 특혜를 받아왔던 서울대조차 법인화 수용의 전제 조건으로 정부 지원의 대폭 확충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대학을 돈 넣으면 물건 나오는 자판기 정도로만 아는 교육부와 인천시는 이제 10살을 갓넘긴 아이에게 돈 몇푼 쥐어주면서 '집 나가 자립해 살라'고 쫓아내는 것이나 다름없는 양해각서를 강행하고 말았다. 게다가 인천시는 여기서 한술 더 떠 인천대가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발전기금 300여억원)마저 송도 이전비용으로 홀라당 빼앗아가 버렸다. 그 결과 인천대는 완전 무일푼의 상태가 된채 '국제경쟁력을 갖춘 거점대학'이라는 '억지춘향'식 부조리극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인천대 집행부까지도 행여 뒤질세라 '경축 국립 인천대 확정'이라는 제목의 어릿광대극을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니면서 동시상영해대고 있다. 법인화가 국립화로 둔갑되고 실책이 업적으로 날조되는 이따위 저질 쇼들의 댓가를 결국 누가 치러야 하는가? 그 대답은 너무도 자명해 그저 우울할 뿐이다.
바로 인천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작년 4월 130만명 서명을 통해 표출됐던 인천 시민들의 국립대에 대한 염원이 또 다시 철저하게 배신당한 결과, 가뜩이나 낙후된 지역의 대학 교육환경은 오히려 점점 더 열악한 상태로 빠지고 인천 시민들의 교육비 지출은 더욱 늘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