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교수/동북아비전21연구소 이사장
명절이 되면 누구나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다. 핵가족이 되었어도 조상과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길이라면 천리가 멀다한들 가지 않을 수 없다.
올 추석은 긴 연휴로, 설렘 또한 배가 된 달콤한 기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명절연휴는 위험한 3·8선 너머의 고향길 찾기와 다름없는 고단한 길이 됐다. 꼭 가야하는 길이지만, 그 길은 험하기만 하다. 평소같으면 몇시간도 안걸리는 가까운 곳이 피난민 행렬과도 같이 끝없는 자동차 행렬을 거쳐야만 갈 수 있는 힘든 길이 되고 말았다. 혹시 하여 좀 더 일찍 다녀오려고도 해보고 새벽같이 출발도 해보지만, 오히려 서두르는 탓인지 이런저런 사고를 만나는 일도 적지 않다. 지옥같은 교통체증을 감수하며 가야하는 명절 귀향길은 점점 환영받지 못하고 단순한 연휴로 퇴색해가고 있다.
이미 고향길 나들이 못지않은 해외여행 나들이로 공항의 붐빔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명절연휴에 고향대신 해외여행을 간다해서 나무랄 일도 아니다. 국제화시대의 해외여행은 필요한 경험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편하고 좋은 일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모처럼의 긴 연휴를 가고 오고로 이틀이나 걸리는 고향 찾기보다는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유익할 수 있다. 그래도 아직 고향을 찾는 이가 많은 걸 보면 가족을 중시하는 우리네 전통은 잘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명절의 고향나들이는 단순히 전통적인 예를 갖추기위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향취에 젖어보고 싶은 인간 본능의 표출이기도 하다.
고향의 옛 모습을 보고 옛 친구를 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는 거다. 하지만 산업사회 발달로 인한 도시의 인구집중화는 고향의 의미를 퇴색시켜 버리고, 더이상 우리를 포근하게 맞이해주는 품안으로서의 고향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고향에 가도 뛰어놀던 옛 자취는 온데 간데 없고 낯설기만 하다. 옛 친구들이라도 있어주면 반가울 텐데. 반기는 친구도 고향에는 없다. 그저 나이드신 부모님만이 자식들을 맞으며 잠시 가족의 정을 나누는 것이 고작이다.
동네 이름은 그대로인데 모습은 낯설기만 하니 이미 그곳은 내 고향이 아닌 것 같다. 세월은 인간을 뒤돌아보게 하는데 뒤돌아볼 사람과 장소가 없으니 아쉬움만 남기는 고향나들이다. 비정상적으로 자리잡은 우리의 왜곡된 발전상이다.
이는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정책실패의 결과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강산 방방곡곡에 국민이 고루 살아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대도시에만 몰리니, 이런 기형적 도시발달에서의 인구이동은 고통만 따를 뿐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서울로, 서울로 하며 수도 입성을 꿈꾸고 있다. 이런 생각을 모두 받아들이기라도 할듯이 서울과 수도권은 더 많은 주택을 지으려고 하고 있다. 장사는 되겠지만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정책이다. 지방자치제로 모든 지자체는 자기 발전만을 주장하며 국가의 균형발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인구의 과도한 집중은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불필요한 비용만을 발생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수도이전은 국가의 실질적인 균형발전의 시작이 될수 있는 상징적인 조치일 수 있다. 작은 나라에 수도가 어디 있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전국을 수도처럼 발전시키면 되는 일이다. 한국 역량으로 보면 어려운 일만도 아닐 것이다. 넓은 미국이나 중국 등과 달라 작은 한국이야말로 전국을 균형있게 발전시킬 수 있는 최적의 나라다. 지금의 불균형한 인구집중은 빨리 해소해야할 국가의 중요한 과제다. 북핵 문제 등으로 전쟁을 걱정하지만 인구집중은 국민방어라는 안보적 차원에서도 유리할 게 없다.
전국 각지의 발전된 고향에서 애향심을 갖고 사는 그런 시대가 그립기만 하다. 인구를 분산해 전국을 균형있게 만드는 정책이야말로 국가만이 할 수 있는 고수준의 중장기적 과제다. 교통발달로 전국이 몇시간 안의 생활권에 들어 있다. 여건만 갖춰진다면 굳이 한곳에 밀집해 불편하게 살 필요가 없다.
자연이 어우러진 최적의 장소에 터를 잡아 발전해온 고향마을은 인간에게 건강한 삶의 환경을 제공 한다. 산이나 계곡, 바다나 강을 일부러 찾을 필요가 없다. 자연을 파괴하며 만든 대도시에는 인공의 가공된 자연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도 계속되는 인구집중을 막고 전국을 균형잡힌 나라로 만들면, 명절의 고향길은 사뿐히 즈려밟고 갈수있는 꽃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