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 들어갔던 한국 기자는 당시 모 신문의 워싱톤 특파원이었던 정연주 전 KBS 사장이었다. 정 특파원은 1994년 9월 초 북경에 나타났다. 북한 취재에 열을 올렸던 북경 주재 기자들은 닭 쫓던 개처럼 그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한국 기자 선별 입북', '북한의 대남 선전 강화설'이라는 보도가 나가자, 정 특파원은 북한으로부터 비공식 취재만 허용한다는 통고를 듣는다. 그는 9·9절 행사와 전문가회의를 취재치 못하게 되자 10일 북경으로 돌아갔다.
지난 현충일이었다. 그 날 공영방송 KBS는 황당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한밤에 40여분간에 걸쳐 전국 시청자에게 내보낸 프로그램의 제목은 '세계 걸작 다큐멘터리 중국 대장정(2) 대륙의 붉은 바람'이었다. 모택동이 영웅으로 미화되고, 그 휘하의 군대가 적기를 휘날리며 진격하고 있었다. 모택동은 천하가 아는 대로 6·25전쟁 당시 인해전술로 통일의 기회를 무산시키고 수많은 사상자와 이산가족을 낸 장본인이 아닌가? 현충일에 KBS는 시치미를 떼고 모택동 찬가를 틀어대고 있었다.
며칠 전, 북한이 핵실험을 한 뒤였다. 세계가 다 말리는 데도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만 북한에 대해 국민들이 머리를 감싸쥐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였다.
KBS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느닷없이 북한 국방위원장의 비공식 대변인이라는 이를 라디오에 불러내 그의 막말을 듣게 했다. 청취자들은 경악했다. 그는 "한반도 운명이 일주일 이내에 다 결정될 것"이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국민들은 알 수가 없다. 북한이 왜 정연주 KBS 전 사장만을 기자 시절 평양에 불러 들였는지, 임기가 끝난 정연주 전 사장이 왜 KBS 사장 자리에 그토록 연연해 하는지, 왜 KBS는 현충일에 모택동 찬가를 틀어야 했는지, 왜 핵 소동 속에서 굳이 '김정일의 입'을 통해 누군가의 말을 듣게 했는지, 그리고 그에 항의라도 할라치면 왜 번번이 '실수였다'고 사과하는지, 국민은 정말, 정말,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