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거리를 혼자 걸었다
열사람 만나 아홉은 친구 되고
한 사람은 금방 당신이 될 것 같다
바람은 당신 향기이련만
중천에 걸린 가냐른 너는
야윈 가슴에 마른 삭정이를 꽂는다
늦사리 이 싹 인양
구절초 젖 몽우리 품은
가녀린 너는 숫내기 입술로
날밤집 술잔에 금가루를 뿌린다

영정(影幀)처럼
가슴에 박힌 영혼 하나
늙밭 가녘의 썩은 까치집에 앉아
발자국에 괸 눈부처 하나하나 더듬는다
가달박 같은 너는
아무도 보지 않는
자정에 그 때만 운다
너를 품은 나는
하늘이 잠든 먹물 밤에
닭벼슬 피보다
더 진한 너의 울음을 듣는다
/백화 장병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