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객원논설위원>
'하나된 조국'이란 슬로건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남북이 무슨 행사를 벌일라치면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들이 신바람이 나서 으레 그 어구를 되풀이해 인용하곤 했었다. 참신한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통일 지향적 슬로건이라고 여겼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의미는 간단치가 않았다. 슬로건이란 원래 개인, 사회, 국가가 앞날에 성취해야 할 목표를 상정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슬로건은 묘하게 이미 지나간 과거 시제(時制)를 취하고 있었다.'하나된 조국'이라는 '과거'를 그 언제인가인 '미래'에 실현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고도의 수사적 테크닉이 가해진 의도적 오류라 할 수 있다. 남북이 힘을 합쳐 앞날에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조국'은 '하나될 조국'이고, 먼먼 훗날 마침내 통일 과업을 이루어낸 그날의 조국은 당연히 '하나된 조국'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 슬로건은 시제를 뒤틀어 판단 정지를 유도하고 있었다. 논리를 쫓아가면, 이미 조국이 '하나'가 됐으니 '분단'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고, 더불어 남북 대치의 엄혹한 현실 대신 있지도 않은 환상적 '통일의 꽃'들만 피워냈던 것이다.
이에서 파생한 '하나' 시리즈도 있었다.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주최 측은 '하나되는 꿈'을 내걸었었고, 북한 미녀 응원단은 '우리는 하나다!'를 들고 왔었다. 그것이 과거형이든, 현재 진행형이든, 명제형이든 그동안 줄기차게 반복 학습되어 온 것이'하나'였다.
그러나 밤낮 '하나'를 외쳐대던 북한이 툭하면 그 '하나'의 다른 반쪽인 '남반부'의 뒤통수나 쳐대더니 급기야는 이판사판식 핵실험까지 강행하고 말았다. 정말 어쩌자고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차제에 그 '하나 슬로건'만은 재고해야겠다. 수사적 환상에 젖어 더 이상 현실도 못 보는 맹목(盲目)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