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객원논설위원>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음이 좋왜라."는 옛 시조는 말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르는 경계(警戒)일 것이다. 스스로 말을 잘 한다고 여겨 말하기를 즐기는 사람치고 말실수를 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을 보면, 이 시구는 말하기보다 차라리 '듣는 공부'나 하라는 가르침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예 듣기를 포기해 스스로 제 귀를 없애버렸거나 하루 종일 제 말만을 쏟아내는 무례한 라운드 스피커를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쏟아내는 말 한마디, 한 마디는 듣는 이의 가슴에 예리한 비수가 되어 꽂힐 수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오죽하면 구설자화환지문(口舌者禍患之門)이라 했을까. 그러나 평소에 말을 가려 하면 이웃들에게 진 빚을 조금씩이나마 갚아갈 수 있다는 지혜도 우리 곁에 있어 다소 위안이 된다. 제 아무리 잘난 이도 남에게 빚을 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세상살이의 업보라면, 더더구나 '말 잘하면 천냥 빚도 갚는다.'는 지혜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나이도 찼는데, 너 시집 안가니?, 이모부, 어디 편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으시네요. 자네 내자는 보약도 안 챙겨주나? 너, 다이어트 하느라고 땀께나 쏟았겠다. 동서, 세월은 어쩔 수가 없구먼, 이젠 백발이네그려. 어머니, 김 서방, 효자예요. 글쎄 어머니 수의 사드린다지 않아요."
이렇게 무심코 뱉은 말들도 듣는 이에게는 스트레스가 되고, 가슴 속 상처로 새겨지고, 심하면 병까지 된다고 한다. 남자들의 술판과 화투판, 며느리, 올케, 동서들의 끝없는 수다판 끝에 남은 것이 우울한 '명절증후군'일 수는 없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 하는 것이/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음이 좋왜라."는 무명씨의 경구가 새삼 되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