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객원논설위원
라몬 막사이사이는 2차 세계 대전 중 항일 게릴라 지도자로 활약했던 필리핀의 정치가이다. 1953년 대통령에 당선돼 국민적 추앙을 받았으나 57년 재선 운동 중 비행기 사고로 급서해 국민들을 큰 슬픔에 잠기게 했다. 필리핀인들은 그의 인품과 공적을 기리고자 58년 막사이사이상을 제정했다. 사회 지도, 정부 봉사, 공공 봉사, 국제 이해, 언론 문화 등 5개 부문에 걸쳐서 아시아인을 위해 헌신한 사람에게 해마다 주는 이 상은 당시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일컬어졌다. 장준하 사상계 주간, 김활란 이대 총장, 김용기 가나안농군학교 교장이 60년대에 이 상을 탔던 주인공들로 그만큼 훈위(勳位)도 높았다.
올 수상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시민운동가 박원순 씨가 선정돼 지난달 31일 현지에서 공공 부문상을 수상했다. 60년대만 해도 KBS 서울중앙방송은 매시간 이 상 수상 소식을 알렸고, 신문들도 대대적으로 보도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매스컴들은 이를 단신으로 보도하는데 그치고 있다.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60년대만 해도 필리핀은 여러 면에서 '제2의 일본'이라고 불리는 선망의 나라였다. 1964년 GNP가 겨우 1백 달러였던 한국이 처음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을 때 필리핀은 벌써 우리의 4배가 넘는 4억5천8백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었다. 태국도 7억3천6백만 달러였다. 그 때 한국은 희망이 없는 나라로 보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40여 년. 한국은 그동안 산업화,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값비싼 역사적 교훈을 얻었고 그 결과 세계가 주목하는 중진국이 됐다. 필리핀인들이 선망하는 나라가 됐다는 사실 자체가 오늘의 노장층은 눈물겹기만 하다. 그런데 최근 사회 각 분야에서 적색경보가 울리고 있다. 정신 차려야 할 시점이다. 결코 필리핀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는 없는 일이다.